니스타

니스타
NISTAR
창립일 1937년 3월 9일 (송화중공업)

1955년 8월 11일 (니스타) (69주년)

국가 인별국 (다국적 기업)
창업주 강석창[1], 강석원[2]
총수 강정호
규모 대기업
유형 복합 기업
매출액 97조 3'111억원
영업이익 26조 2'050억원[3]
시가총액 525조 9'133억원[4]
공정자산총액 177조 7'117억원[5]
직원수 220'511명[6]
소재지 만산광역시 서상구 광장로 22 (정양동)

개요

인별국의 대기업 중 하나로, 주로 철도차량제작 등의 중공업 계열을 메인으로 한다.

그외에도 군용 무기나 전차[7]부터 시작하여, 철도차량제작은 물론, 조선업, 무역, 증권, 은행, 보험, 복지, 보안, 컴퓨터, 반도체, 통신, 게임, 카지노, 스포츠, 버스, 에너지, 인공지능, 우주/항공, 식품 등의 여러 분야에 넓게 뻗어나아가 있다.

역사

송화군수공업

1937년, 인별국내외 잦은 전쟁의 발발로 전쟁무기 보급이 급해지면서, 화양주 내포도 송화[8]에 전쟁무기 납품 및 생산을 위해 만들어진 군수공장에서 출발하였다.[9]

당시 송화군수공업에서는 획기적인 전쟁무기 생산을 위해, 전국 곳곳의 다양한 기술공학자 및 과학자를 끌어모았고, 그로 인해, 전쟁을 위한 돌격소총 및 전차를 생산하는데에 굉장히 큰 기여를 하였다.

1940년에 들어서, 전쟁에서 가장 큰 보급의 역할을 하는 철도분야로 뻗어나갔다. 당시엔 생산 기술력이 지금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주요 증기기관차 및 디젤기관차의 중정비 및 경정비를 도맡아왔다.

그리고 어느정도 기술력이 생기게 되자, 송화군수공업에서는 무려 포신이 달린 기관차를 만들어내버렸다. 말 그대로, 전차의 포신을 아에 기관차랑 결합을 해버린 형태였으며, 보급열차가 무방비하게 파괴되는 것을 어느정도 방지하려고 튼튼한 내구성과 공격력을 동시에 갖춘 기관차를 개발하는데 성공한 것이다.[10]

송화중공업

세계대전이 어느덧 하동국의 패망과 항복으로 종전선언이 되고, 어느정도 국내가 안정화가 된 뒤인 1950년대에 접어들자, 더 이상 이전처럼 전쟁무기를 마구 찍어내거나 개발을 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고 송화시에서는 주력생산라인을 군수물자가 아닌, 철도차량산업을 주력으로 미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동시에 사명도 군수공업이 아닌, 송화중공업으로 변경하면서 전국적으로 철도차량제작기업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였다.

1951년에, 아랫동네 은영군[11]에 위치해있던, 은영조선소와 합치면서, 배를 건조해내기도 하였고, 이렇게 규모가 한 층 커진 송화중공업을 통해, 송화시를 비롯한 내포도 지역들은 도시자본을 늘려나아갈 수 있었다.

이에따라, 지역 자본을 늘렸을 뿐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고장이나 파괴되었던 여러 철도시설물들을 복구 및 생산해내기 시작하였고, 이는 곧 국가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하였으며, 또한, 조선소와 맞물려가지고 송화중공업 생산차량을 서서히 국외로도 수출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최윤주 정부에 접어들자, 대대적인 국가 발전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더욱 효율적인 기술발전과 자본확장을 위해, 인별국의 여러 산업들의 공기업들을 대대적인 민영화로 바꾸는 정책이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송화중공업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 송화시에서 기업을 민영화 시키기로 결정 하였으며, 마침내 1956년 송화시로부터 강석창의 아들인 강석원을 회장으로 하여 민영기업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민영기업으로 들어서고 나자, 회장이 된 강석원은 송화중공업의 기술을 더 넓은 분야에서도 활용될 수 있게, 건설분야에 발을 뻗기 시작하였으며, 1958년에 '송화건설'을 출범시켰다.

또한, 강석원은 송화중공업을 구성하던 당시 다수의 기술진 및 개발진들이 1930년대 전쟁무기 생산을 담당했기에, 인별국의 상당한 기술진들이 모집되어있다는 점을 크게 활용시키기 위해, 민영화가 된지 4년만인 1960년에 무려 최대 200km/h로 주행이 가능한 디젤동차(!)를 제작해, 상용화하는 것에 성공했다는 것이다.[12]

이 괴물같은 스펙의 디젤동차를 제작하고 나서, 국내외적으로 송화중공업은 미래전망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고, 간간히 해오던 해외수출 사업도 커져, 복잡해진 무역체제에 맞춰, 1961년 송화중공업무역회사를 출범시켰다.

송화중공업 회장 강석원은 이러한 성공을 하였음에도, 최근들어 점점 철도노선이 전철화가 되어가고 있다는 추세에 맞춰, 1962년 경부터 전기동차 개발에 열심히 투자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번엔 전기동차로 괴물 스펙을 만들어보자 하였고, 마침 1960년 중반부터 정부주도의 고속철도 건설에, 송화중공업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고속열차 개발사업에 뛰어들어갔다. 해외 여러 철도기업들을 조문하고, 꾸준한 기술이전 및 개발 끝에, 1969년에 인별국 최초의 고속열차를 만드는데에 크게 성공하였다.

니스타 출범과 확장

이렇게, 송화중공업이 고속열차를 만드는데 성공한 시점에서, 강석원은 이후, '중공업'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펼쳐나가기 위한 목적으로, 1971년, 사명을 니스타로 변경하였다.

이에따라, 송화중공업은 니스타중공업, 송화은영조선소는 니스타조선소, 송화중공업무역회사는 니스타물산, 송화건설은 니스타건설로 사명이 바뀌었다.

순식간에 높은수준의 철도차량제작기술을 보유하게 된 시점에서 수입/수출 규모가 커지자, 강석원은 보다 효율적으로 무역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본사도 송화에서 만산으로 이주시키면서, 적극적으로 철도차량을 수출을 하기 시작하게 되었고, 무역회사 규모도 크게 확장되어, 철도차량 이외 다른 물품도 수입/수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다보니, 국내외적으로 무역회사로도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1973년, 해외서 기관차를 제작, 납품하기로 유명한 MDT사로부터 꾸준히 송화중공업시절인 1968년부터 이뤄진 기술이전 계약이 성공하게 되면서, 니스타중공업에선, 스스로 기관차를 제작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1977년, 어느덧 자본이 많아지고, 무역 일을 통한 금융거래도 활발해지자, 자본에 관한 정리를 위해, NI은행을 출범시키면서 금융업에 발을 뻗어나아갔으며, 얼마안가 1980년에는 NI증권 회사를 설립하였고, 같은 해에, Ni보험이라는 보험사까지 출범시키면서, 금융사업에 크게 진출하였다.[13]

1991년, 니스타건설서, 4년간의 시공 끝에 만산에 377m 스카이타워를 완공하였다. 현재도 만산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아있으며, 만산시 시내 전경을 구경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에, 현재도 굉장히 많은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다.

사명

송화군수공업 (1937~1950)

딱히 큰 의미 있게 지어진게 아닌, 송화시에 위치한 군수공장이라 해가지고, 송화군수공장이라고 불렸다. 심지어 정식 명칭이 아니다. 실제론, 그냥 이름 모를 군물자 생산 공장이었으며, 그냥 다들 송화군수공장이라고만 불렀다.

송화중공업 (1950~1971)

군수공장의 규모가 커지자, 송화시에서는 송화중공업이라 이름을 지었다. 이후, 민영화가 된 뒤에도 대략 15년간은 이 이름을 유지하였다.

니스타 (1971~현재)

어느덧,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이 되어가면서, 당시 회장이던 강석원은 중공업 이외 더욱 넓은 사업확장을 위해, 1971년에 사명을 니스타로 변경하였다.

의미는, "New Identity STAR"의 줄임말로, 직역하면 '새로운 성질의 별', 즉, 새로운 걸 만들어내고 발전해 나아간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동안 이뤄냈던 업적들도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걸 해냈다는 기업의 성격까지 고려하여 지었다고 한다.

슬로건

 강철열차! 송화중공업! (1950~1955)
 가보자, 앞으로, 송화중공업과 함께! (1955~1971)
 새로운 출발, 끝없는 가능성. (1971)
 니스타와 함께. Go, with Nistar. (1971~1995)
 Nice Nistar. (1995~2022)
 Never stop, Never give up, Nistar continues. (2022~)

특징

납품도 빠르면서, 굉장히 타 철도차량제작업체들에 비해 결함이 없기로 유명하다.

1965년에 고속열차 제작/납품 기업으로 선정되면서, 원래 디젤동차 기반으로 굴러가던 니스타는 전기동차 연구에 매진몰두하기 시작하였고, 이로써 국내 1위 철도차량제작업체로 선정되었다.

철도차량부품에 주로 사용하는 반도체 소자를 가장 처음으로 생산해내었던 기업이다. 당시, 니스타 GTO 반도체 소자를 처음 생산해내었으며, 에이따라 한동안 전국 대부분 철도차량을 생산하는 기업에서는 니스타의 반도체를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니스타에서 국내최초로 IGBT 소자를 직접 생산해내었으며, 이때 괴물같은 스펙의 차량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니스타 반도체 하면 IGBT가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현재는 Sic, PMSM 등의 새로운 반도체 소자 제작 기술도 보유하고 있으며, 철도차량에 CTBC 신호체계를 집어넣는 등의 다양한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계열사

니스타조선소 - 니스타의 가장 오래된 자회사. 과거에는 은영조선소로, 송화시 아랫동네 은영군[14]에 위치해있던 공기업 조선소였다. 1950년대, 송화시와 은영군이 서로 계약하여 상호 도움을 주는 관계가 되었고, 민영화 정책으로 동시에 민영화, 그리고 그 직후에 송화은영조선소로 이름을 바꾸며 송화중공업의 자회사로 편입이 되었다. 이후, 모회사인 송화중공업이 니스타로 사명을 바꾸자, 니스타조선소로 같이 사명을 바꾸게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Ni네트웍 - 니스타에서 설립한 무역회사로, 현재는 국내 대규모 무역업을 맡는 곳중 하나가 되었다. 한참 무역량이 많아지던 1970년대에, 무역업을 자회사로 분리하여 현재까지 운영중이다.

니영자동차 - 니스타중공업에서 버스차량 제작, 납품을 하던 곳을 인수하여, 자회사로 편입되었다.

각주

  1. 송화중공업 창시에 기여한 인물로, 현 강정호의 증조할아버지이다.
  2. 강석창의 아들로, 총책임자인 자신의 아버지에게 물려받으면서 민영화가 되었다.
  3. 2024년 기준
  4. 2024년 8월 기준
  5. 2023년 기준
  6. 2023년 기준
  7. 군용 차량인 그 전차가 맞다.
  8. 송화광역시
  9. 이때, 송화군수공업을 만드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인, 강석창을 총책임자로 하여 세워졌다.
  10. 튼튼한 내구성 때문인지, 이 포신이 달린 기관차는 종전 이후에도 운영을 중단하지 않았는데, 무려 1960년대 중반까지 전국 곳곳으로 화물 운송 작업을 수행하였다(!!!)
  11. 현, 화양주 내포도 은영시
  12. 왜 하필 디젤동차였냐면, 당시 인별국 철도는 대부분 전철화가 진행되지 않은 철도였고, 전쟁시기당시 가장 에너지 효율이 높았던 디젤동력을 중심으로 개발이 매우 집중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3. 초창기 설립당시엔, 주로 교통분야에서의 사고/손해보험을 주로하여, 작은 규모로 운영이 되었다, 그러다가, 현재에는 의료/생명보험, 사망보험 등등 규모가 커져서, 인별국의 거대 보험사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14. 현, 화양주 내포도 은영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