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런 켈리

제6대 사우스코리아 주지사
미합중국 제84-99대 연방 상원의원
딜런 켈리
Dylan Kelly
본명 딜런 마이클 켈리
Dylan Michael Kelly
출생 1924년 1월 6일(1924-01-06)
일본 전라남도 무안군 하의면 후광리 121
사망 2021년 8월 18일 (97세)
미국 사우스코리아 주 메이플턴 카운티 이스트브리지
재임기간 제6대 사우스코리아 주지사
1987년 1월 19일 ~ 1995년 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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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배우자
자녀 아들 미카엘, 로버트
학력 파운데이션 대학교 (졸업)
사우스코리아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 석사)
최종 당적 민주당
의원 선수 6 (상원)
약력 사우스코리아 주 상원의원 (1949 ~ 1954)
사우스코리아 연방 상원의원 (1955 ~ 1986)
제6대 사우스코리아 주지사 (1987 ~ 1995)

개요

딜런 켈리(Dylan Kelly)는 1955년부터 1986년까지 사우스코리아 주 상원의원, 1987년부터 1995년까지 제6대 사우스코리아 주지사를 역임한 미국의 정치인이다.

전남 무안군 하의도에서 태어난 켈리[1]는 가난한 생활을 보냈다. 그는 1945년 파운데이션 대학교[2]에서 경제학 학위를 취득하고, 1947년 사우스코리아 대학교[3]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대학생활 시절 여운형의 조선건국준비위원회에서 일했으나, 신탁통치 찬성으로 분위기가 흘러가자 탈퇴했다. 그러나 1947년 소련의 지원을 받은 조선인민공화국이 이북에 탄생하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싱먼 리를 중심으로 미국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4]

켈리는 미국에 방문했을 당시 싱먼 리가 상원에서 사우스코리아 지역의 미국 편입을 주장하는 것을 보고 충격받았다고 회고했다. 켈리는 리의 상원 연설이 끝난 직후 항의했지만, 이북 지역에서는 이미 소련의 지원을 받은 괴뢰국이 세워지고 있는데 남한만이 정부를 따로 수립해 소련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겠냐는 리의 이야기에 수긍했다. 이후 켈리는 1947년부터 1948년까지 사우스코리아 편입 운동을 주도했으며, 1948년 사우스코리아 주 승인법이 발효되자 사우스코리아 주 상원의원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54년 케이든 허트싱먼 리의 부지사 러닝메이트로 선택되어 연방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할 자격을 얻었다. 켈리는 30세의 나이로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1970년 사우스코리아 민주당의 요청으로 당시 사우스코리아의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공업화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던 제임스 파월을 상대로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이후 1986년 상원의원직을 포기하고 다시 한 번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다. 그는 당선되어 1987년 1월 취임했다. 주지사로서 켈리는 사우스코리아 주 정부 역사상 가장 큰 사업인 주전역초고속인터넷 구축 법안에 서명했다. 또한 그는 1987년 전주민의료보험법에 서명했다. 또한 1988년 주민기초생활보장법, 1989년 콘텐츠진흥법의 통과에 큰 역할을 했다. 켈리는 1990년 무난히 재선에 성공해 87년의 의료보험법과 더불어 주민연금, 고용보험, 산업재해보험을 사우스코리아 사회보험 패키지로 묶어 통과시켰다.

재임기간 뛰어난 성과로 1994년 3선에 성공하지 않겠냐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지만, 사우스코리아의 빈곤 문제를 해결한 제임스 파월 주지사의 딸인 헤일리 파월이 출마하자 기세가 꺾였으며, 결국 1%p 미만의 접전 끝에 패배해 1995년 정계를 은퇴했다. 물론 이듬해 예정된 1996년 연방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해달라는 요청이 많았지만, 이를 거절하고 대신 와이어트 쿠퍼를 지지해 그의 당선을 도왔다.

이후에도 사우스코리아 민주당의 지도부로 계속해서 활동했다. 2021년 코로나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장례식에는 찰스 터너 주지사나 경쟁자였던 헤일리 파월 전 주지사 등 사우스코리아 내의 거물 정치인들이 찾아왔다.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48 미국 사우스코리아 상원의원 선거 사우스코리아 1구 민주당 당선 (1위) 초선
1950 미국 사우스코리아 상원의원 선거 재선
1952 미국 사우스코리아 상원의원 선거 3선
1954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사우스코리아 초선
1960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재선
1966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3선
1970 미국 주지사 선거 4,651,736 (40.16%) 낙선 (2위)
1972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당선 (1위) 4선
1978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5선
1984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6선
1986 미국 주지사 선거 6,076,257 (50.11%) 초선
1990 미국 주지사 선거 6,945,210 (56.05%) 재선
1994 미국 주지사 선거 7,216,949 (49.09%) 낙선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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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연방 상원의원 (사우스코리아 클래스 2)
제81-83대
케이든 허트
제84-99대
딜런 켈리
제100-106대
J. T. 파커

각주

  1. 당시 이름 김대중
  2. 당시 건국대학교
  3. 당시 경희대학교, 현재 USK 레이크필드 캠퍼스
  4. 조선건국위원회에서 활동할 당시 이승만(싱먼 리)이 주도하는 반도회의에서 영입 제안을 왔던 인연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