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요동정벌 혹은 동녕부 정벌은 1369년에서 1370년까지의 원·명 교체기의 공백 상태를 이용하여, 고려의 전통적인 북진책을 실현하려고 일으킨 원정이다.
개요
1368년 원 순제는 주원장의 군대에게 쫓기다가 죽고, 그 뒤를 이어 기황후(奇皇后) 소생의 소종(昭宗)이 즉위하였으나 정세를 돌리지 못하였다. 고려의 고조는 원나라의 연호 대신 명나라의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관직명을 원나라 지배 이전으로 복구하였다. 고조는 대륙의 정치적 변동을 이용하여 원의 지배에서 벗어나 북진주의를 실현하려고 하였다.
파사부 정벌
“ 令宰樞至吏胥 人備弓一 矢五十 劒一 戈一 閱于崇文館。.
재추(宰樞)로부터 이서(吏胥)에 이르기까지 모든 관원들에게 분부하여 활 1개, 화살 50개, 검(劒) 한 자루, 과(戈)한 자루를 갖추게 한 다음 숭문관(崇文館)에서 사열했다.
-《고려사》 권38 공민왕 원년(1352년) 윤 3월-”
고조는 1351년, 즉위하자마자 군사 검열을 실시하였다. 이는 요동 탈환의 의지를 보여주는 기록인데. 요동정벌은 고조의 반원 정책과 더불어 고구려의 고토 회복, 친원 세력이이 모여있던 요동을 정리하고 하는 의도였다. 또한 고려 내부적 불만을 외부로 돌리고자 하였다.
요동 정벌은 고조 즉위 초부터 준비했던 가장 큰 목표로 첫 단계는 압록강 건너 요동으로 향하는 길목인 파사부 공략이었다. 1357년, 고조6년 6월에 인당에게 병력을 주어 압록강을 건너도록 하였다. 고구려 부흥 세력의 고연무와 신라의 설오유의 연합작전 이후 최초로 압록강을 건너 요동정벌을 한 것 이었다.
“ 癸丑。印璫引兵渡鴨綠江 攻婆娑府等三站 破之。
계축일. 인당(印璫)이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파사부(婆娑府) 등 세 참(站)을 공격해 격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