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중 하나의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관리자. 문서를 고치려면 이메일 인증 절차가 필요합니다. 사용자 환경 설정에서 이메일 주소를 입력하고 이메일 주소 인증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namucat|문조}} {{상위 문서2|문조}} {{목차}} {{clearfix}} =개요= [[문조]]의 업적을 정리한 문서. =상세= {{인용문1|[[문조|황제]]가 창경궁 환경전에서 붕(崩)하였다. 황제는 우주의 이치에 밝고 덕을 알았으며 지혜롭고 어질었다. 문무의 도리를 부지런히 행하여 용감히 위업을 이룩하면서도 서적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배움과 다스림에 게으름이 없고 매일 스스로를 일신하여 삼가기를 마지 않으니 지극한 성인의 도가 만방에 떨치게 되었다. 황제는 스스로 그렇게 하듯 새롭고 낯선 것이더라도 백성과 나라를 위한 것이라면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삼한의 근체(根蔕)를 잊지 않고 과업을 이어나갔다.|문조실록 [[건창]] 17년(1877년) 2월 9일 첫번째 기사}} {{인용문1|'''[[대한국 (동방)|삼한]]에 성조(聖祖)대제<ref>강희제</ref>와 같이 영걸한 군주가 나왔으니 도리가 있겠는가.''' 인군(人君)은 사람에게서 나오나 성군(聖君)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다. |청 사신 양계근}} * 세전법(稅錢法): 조세금납화, 조세법제화등 세제개혁 * 《기기통고(氣機通考)》: 성리학을 통한 근대화 정당화 * 《양리기론(洋利氣論)》: 서양 근대 과학 소개 및 서양 철학에 대한 성리학적 해석 * 《구신산학(歐新算學)》: 미적분, 삼각함수등 서양 수학 집대성 * [[압록강 전투]]: 청의 침공 방어 성공 및 근대적 외교로 전환 문조는 구조적 한계로 인해 점점 쇠락해가던 조선을 체계적으로 개혁하여 근대화의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더 나아가 상당한 수준의 근대화까지 이루어냈다. 문조는 조선이 안고 있던 전근대적 문제점을 명확하게 인지하였으며 거의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인식과 제도를 새롭게 했다. 다시말해, 문조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일신한 것을 넘어서 격변의 시기에 맞추어 완전히 새롭게 개조해낸 것이다. 삼정의 문란으로 피폐해진 민정을 바로잡은데다 조정의 수입까지 크게 증대시켰으며 그간 조선에서 천대시되고 탄압받던 상업을 진흥시키고 광업등 공업 또한 지원하였다. 이러한 내정개혁은 한국이 개항하여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도 국체가 흔들리지 않는 기반을 제공하였다. =분야별 업적= ==경제== 문조 치세를 관통하는 경제 분야에서의 업적은 '''세제개혁'''과 '''상공업 진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정치 및 행정== ==외교== ==군사== ==과학== ==문화== ==자기관리==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 (원본 보기) 틀:Clearfix (원본 보기) 틀:Hr (원본 보기) 틀:Namucat (원본 보기) 틀:Namucat/css (원본 보기) 틀:Namucat/styles.css (원본 보기) 틀:Navbarcolor (원본 보기) 틀:Title (원본 보기) 틀:가로줄 (원본 보기) 틀:내비게이션 바 색상 (원본 보기) 틀:목차 (원본 보기) 틀:상위 문서2 (원본 보기) 틀:여백 (원본 보기) 틀:인용문1 (원본 보기) 문조/업적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