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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9일에 최초로 홍콩 경찰 추산 25만, 주최 측 추산 103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시위가 시작되었으며 거센 시위의 열기로 인해 캐리 람 행정부가 법안 처리 연기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법안의 완전한 철패를 선언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중국공산당 (영광이 다시 오길)|중국공산당]]이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요구하고 스티븐 로 경무처장 명령으로 고무탄과 최루탄이 발사되어 16세 학생이 머리에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고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ref>단 이는 총상이 아닌 진압 과정중 추락사로 인한 사망이다</ref> 여론에 불을 지르는 행위가 이어지자 입법회등 주요 정부 건물이 포위당하고 200만의 시위대가 운집하는 등 분위기가 고조되는 추세이다. | 2019년 6월 9일에 최초로 홍콩 경찰 추산 25만, 주최 측 추산 103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시위가 시작되었으며 거센 시위의 열기로 인해 캐리 람 행정부가 법안 처리 연기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법안의 완전한 철패를 선언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중국공산당 (영광이 다시 오길)|중국공산당]]이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요구하고 스티븐 로 경무처장 명령으로 고무탄과 최루탄이 발사되어 16세 학생이 머리에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고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ref>단 이는 총상이 아닌 진압 과정중 추락사로 인한 사망이다</ref> 여론에 불을 지르는 행위가 이어지자 입법회등 주요 정부 건물이 포위당하고 200만의 시위대가 운집하는 등 분위기가 고조되는 추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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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분기는 7월 1일에 '''홍콩 입법회가 점거''' 당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입법회를 점거한 시위대는 본회의장에서 영국령 홍콩 국기를 휘날리는 등의 행동을 하였으며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부상자가 속출하자 결국 익일에 점거를 해제하였다. 시위가 장기화 되는 가운데 캐리 람 행정장관이 법안의 사망(Dead)를 선언하였으나 철회(Withdraw)를 선언하지 않은, 즉 '''말장난'''에 불과하기에 시위대는 시위를 이어나갔다 | 2019년 3분기는 7월 1일에 '''홍콩 입법회가 점거''' 당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입법회를 점거한 시위대는 본회의장에서 영국령 홍콩 국기를 휘날리는 등의 행동을 하였으며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부상자가 속출하자 결국 익일에 점거를 해제하였다. 시위가 장기화 되는 가운데 캐리 람 행정장관이 법안의 사망(Dead)를 선언하였으나 철회(Withdraw)를 선언하지 않은, 즉 '''말장난'''에 불과하기에 시위대는 시위를 이어나갔다. | ||
백색테러가 | 그러나 이에 대해 중국 본토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삼합회와 정치깡패들을 동원한 백색테러가 실시되었으며 총파업이 진행된 와중에도 캐리 람 행정장관은 강경론을 굽히지 않았다. 8월 12일에는 시위대가 홍콩 국제공항을 점거하면서 공항 기능이 마비되었고 불매운동 등으로 규모를 키워나가는 가운데에 미국이 공개적으로 중공 당국을 비난하며 미중관계가 악화되었다. 이후 인간 띠 잇기등의 평화집회로 국면이 전환되었으나 경찰의 최루탄 발사와 물대포, 실탄 발사등의 강경 진압으로 인해 폭력시위가 재발하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26일부터 평화시위로 돌아왔다. 8월 30일에는 조슈아 웡과 아그네스 차우 등의 여러 민주화 운동가들이 체포된 가운데 다음날인 31일에 최루탄과 형광 물대포를 이용한 유혈진압이 자행되었다. | ||
9월 2일에 홍콩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대학교가 합세한 대규모 동맹휴학이 일어났으며 직장인들이 합세한 총파업이 일어났다. 9월 4일에는 시위대의 숙원중 하나이자 시위의 주 발생원인이었던 홍콩 송환법이 캐리 람 행정장관에 의해 | 9월 2일에 홍콩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대학교가 합세한 대규모 동맹휴학이 일어났으며 직장인들이 합세한 총파업이 일어났다. 9월 4일에는 시위대의 숙원중 하나이자 시위의 주 발생원인이었던 홍콩 송환법이 캐리 람 행정장관에 의해 정식적으로 철회되었다. 그러나 다음날 캐리 람 행정장관이 해당 법안 철회가 중공 지도부의 양해와 존중 하에 이뤄졌으며 송환법 철회를 제외한 나머지 4개 사안은 어느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하자 범민주파 야당진영은 캐리 람의 송환법 철회를 거부했다. | ||
이후 캐리 람 행정장관은 시위대에 '대화'를 제의하였으나 오히려 모욕 섞인 비난만을 들어야만 했고 오히려 9월 20일에 국제엠네스티에 의해 홍콩 경찰의 인권탄압 실태를 공개되며 더더욱 입장이 난처해 졌다. 국제앰네스티에 의하면 체포된 시위대에 대하여 고문과 폭력이 자행되고 있으며 '''전기고문 및 성고문 협박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러한 경찰의 반 인륜적 행위와 캐리 람 행정부의 고압적 태도로 인하여 오성홍기와 중공 당기를 불사르고 시진핑과 마오쩌둥의 사진을 짓밟는 등 반중 색채가 강해졌다. | |||
==== 4분기 ==== | ==== 4분기 ==== | ||
10월 3일 캐리 람 | 10월 3일 부터 10월 5일에 걸쳐서 캐리 람 행정장관과 홍콩 행정부가 사실상의 계엄령인 긴급조치의 발동과 시위대의 복면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인 복면금지법의 실시를 선언한 가운데 중국 인민해방군이 공개적으로 홍콩 시내로 진입하는 등<ref>시위 진압이 아닌 공개 진입이다</ref> 사회 분위기가 경직되고 있다. 이에 10월 15일에는 미국 하원 본회의에서 하원의원 435명의 만장일치로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 홍콩 시위진압 금지법, 홍콩 인권 상황에 대한 중국 규탄 결의안이 가결되며 미국의 중국압박이 더욱 거세졌다. 미국에 압박에 부담을 느낀 것인지 10월 23일에 테레사 쳉 법무장관이 홍콩 입법회에 출석하여 홍콩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안)을 공식적으로 철회하였다. | ||
11월 1일, 중국공산당이 홍콩에 대한 '''전면통제''' 의사를 밝히며 홍콩 시민들의 불안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분노한 시위대가 신화통신 건물을 공격해 파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으며 사망자가 늘어나고 홍콩 경찰의 '''16세 소녀에 대한 집단 성폭행 의혹'''이 붉어지고 경찰이 3파 투쟁<ref>학생 수업거부, 노동자 총파업, 소상공인 철시</ref> 시위진압 와중 '''가슴을 조준하고 실탄을 발포'''하는 등 시위대의 분노에 기름을 붇는 행동이 다수 일어나 시위대의 반중, 반정부 여론이 한층 더 강해졌다. 그런 와중 주 홍콩 인민해방군이 '도로 청소'를 명목으로 홍콩 행정부의 동의 없이 투입되며<ref>실제로 도로 청소와 철도 복구만 하기는 했다</ref> 사실상의 무력시위를 단행하자 여론이 더욱더 악화되었다. | |||
11월 18일에는 휴교령이 내려진 가운데에 교통 요충지인 홍콩이공대학에서 농성하는 학생들과 시위대에 대한 경찰측이 최후통첩을 날렸으나 학생들은 유서까지 작성하고 항전의 뜻을 밝혔으며 홍콩 전역의 대학들이 일제히 시위에 들어갔다. 이후에도 홍콩 행정부는 타협다위는 없다는 듯 강경파인 크리스 탕을 경찰청장에 취임시키는 행보를 보이자 11월 20일에 미국 상원이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을 통과시티고 다음날에 미국 하원이 해당 법안의 재의결해 통과시키는 등 미국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또한 21일에는 '함께 점심 먹기' 시위가 일어났다. | |||
11월 24일에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가 실시되었으며<ref>한국의 지방의원을 뽑는 선거에 해당한다</ref> 선거 결과 범민주 388석 vs 친중파 58석으로 민주파가 압승을 거두었다. 11월 27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시위대 지지를 발표하였으며 다음날에는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에 서명하여 공식적으로 법안이 효력을 갖게 되었다. 이에 마음이 조급해진 홍콩 경찰측이 이공대 내부로 진입하였으나 이미 이공대 내에 있는 모든 시위대는 이미 탈출한 뒤였으며 결국 29일에 봉쇄를 해제하였다. | |||
12월 1일, 민주화 시위대와 경찰측의 충돌이 경찰측의 수류탄 발포로 인해 재개되었으며 홍콩 경찰이 시위진압에만 신경쓰고 정작 강력 범죄에는 대응하지 못하는 치안 공백 상태가 지속되자 캐리 람 행정장관이 민심 수습책을 발표하였다. 캐리 람 행정부에 대한 만심이 폭락하였음에도 캐리 람 본인에 대한 탄핵안은 찬성 26 대 반대 36으로 부결되어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12월 7일에서 8일에 이틀에 걸쳐서 세계 인권 선언 기념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으며 이는 규모가 축소되었음에도<ref>2019년 12월 10일은 화요일이었다</ref> 12월 10일 세계 인권 선언 선언일 당일까지 계속되었다. | |||
한편 12월 4일 미국 하원의 신장 위구르 인권법 통과로 인해 미국의 압력이 더욱 거세졌으나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캐리 람 지지선언을 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에 코웃음 치듯 시진핑이 마카오를 방문한지 이틀 째 되는 날인 12월 19일에 미국 하원 외교위가 티베트 인권법안 통과시키며 시진핑에게 엿을 먹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시위대의 요구 전면 거부한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 |||
12월 24일과 25일에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으며 홍콩 경찰측은 이제 관광객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시위대에 총구를 겨누는 등 막장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12월 30일과 31일에도 신년맞이 시위가 대규모로 이어졌다. | |||
=== 2020년 === | === 2020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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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공화국 임시정부 (영광이 다시 오길)|홍콩 공화국 임시정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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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6일 (일) 20:42 판
![]()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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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운동의 상징 흑양자형기 | |
홍콩 시내에서 시위중인 시민들 |
개요
유튜브에 노출 되었던 Freedom Hong Kong 광고 | |
“10년 후 초등학생들이 홍콩 민주화를 위해 시위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이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
― 조슈아 웡 당시 데모시스토 비서장(사무총장) |
“저는 경찰과 맞서거나 파괴를 하려고 거리로 나서는 게 아닙니다. 저는 정부의 잘못에 항거하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국민이 자기네 정부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I don't take to the street to clash with police or to destory. i'm here to protest what's wrong with the government. People should not be afraid of their governments. Governments should be afraid of their people.” |
― 뉴욕 타임즈 홍콩의 마지막 편지 中 |
反對逃犯條例修訂草案運動[1] / 反送中大遊行[2] / 2019 Hong Kong anti-extradition bill protests
2019년 6월 9일부터 2024년 9월 15일까지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에서 진행 되었던 대규모 민주화 시위이다.
원인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영국 정부는 일국양제, 항인치항[3], 고도의 자치 보장 이 세가지 조건을 전제로 하여 반환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홍콩 통제와 탄압은 반환이후 점차 거세져만 갔으며 시진핑 정권의 등장 이후로는 홍콩 자치의 근간인 일국양제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불만이 누적 되던 와중에 범죄인 인도법안으로 인해 홍콩 시민의 불만이 폭발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홍콩 범죄인 인도법안
민주화 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홍콩 범죄인 인도법안의 기본적인 요지는 홍콩 내에서 범죄를 일으킨 범죄자를 중국 본토로 송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 해야 할 점은 중국은 고도의 권위주의-전체주의 독제국가라는 것이다. 즉 중국 공산당을 비난하는 발언을 한 정치인이나 사회·인권 운동가를 합법적으로 중국으로 송환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미 암암리에 중공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본토로 끌려가 고문을 받은 사실이 폭로 된 상황에서 인도법안이 통과되면 사실상 홍콩 내 범민주파 세력은 질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범죄인 인도의 최고 결정권자가 사법부가 아닌 행정부의 수반인 행정장관 이라는 것 또한 큰 문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홍콩 행정장관은 친중파가 절대 다수 일 수 밖에 없는 홍콩 입법회에서 중국 공산당이 낙점한 후보 중에 한 명을 선출하는 구조이기에 중공의 지령을 받은 친중파가 멋대로 민주파 세력을 탄압하는데에 악용 될 수 있기 때문이였다.
경과
3월 31일 최초 시위 이후로 시위 참가 인원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참가 계층도 남녀노소, 심지어 기업인들도 참가하고 있다. 또한 시위도 홍콩섬에서 구룡반도를 포함한 홍콩 전역으로 확산되는 추세이다.
분기별 경과
2019년
2분기
2019년 6월 9일에 최초로 홍콩 경찰 추산 25만, 주최 측 추산 103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시위가 시작되었으며 거센 시위의 열기로 인해 캐리 람 행정부가 법안 처리 연기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법안의 완전한 철패를 선언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중국공산당이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요구하고 스티븐 로 경무처장 명령으로 고무탄과 최루탄이 발사되어 16세 학생이 머리에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고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4] 여론에 불을 지르는 행위가 이어지자 입법회등 주요 정부 건물이 포위당하고 200만의 시위대가 운집하는 등 분위기가 고조되는 추세이다.
3분기
2019년 3분기는 7월 1일에 홍콩 입법회가 점거 당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입법회를 점거한 시위대는 본회의장에서 영국령 홍콩 국기를 휘날리는 등의 행동을 하였으며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부상자가 속출하자 결국 익일에 점거를 해제하였다. 시위가 장기화 되는 가운데 캐리 람 행정장관이 법안의 사망(Dead)를 선언하였으나 철회(Withdraw)를 선언하지 않은, 즉 말장난에 불과하기에 시위대는 시위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중국 본토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삼합회와 정치깡패들을 동원한 백색테러가 실시되었으며 총파업이 진행된 와중에도 캐리 람 행정장관은 강경론을 굽히지 않았다. 8월 12일에는 시위대가 홍콩 국제공항을 점거하면서 공항 기능이 마비되었고 불매운동 등으로 규모를 키워나가는 가운데에 미국이 공개적으로 중공 당국을 비난하며 미중관계가 악화되었다. 이후 인간 띠 잇기등의 평화집회로 국면이 전환되었으나 경찰의 최루탄 발사와 물대포, 실탄 발사등의 강경 진압으로 인해 폭력시위가 재발하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26일부터 평화시위로 돌아왔다. 8월 30일에는 조슈아 웡과 아그네스 차우 등의 여러 민주화 운동가들이 체포된 가운데 다음날인 31일에 최루탄과 형광 물대포를 이용한 유혈진압이 자행되었다.
9월 2일에 홍콩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대학교가 합세한 대규모 동맹휴학이 일어났으며 직장인들이 합세한 총파업이 일어났다. 9월 4일에는 시위대의 숙원중 하나이자 시위의 주 발생원인이었던 홍콩 송환법이 캐리 람 행정장관에 의해 정식적으로 철회되었다. 그러나 다음날 캐리 람 행정장관이 해당 법안 철회가 중공 지도부의 양해와 존중 하에 이뤄졌으며 송환법 철회를 제외한 나머지 4개 사안은 어느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하자 범민주파 야당진영은 캐리 람의 송환법 철회를 거부했다.
이후 캐리 람 행정장관은 시위대에 '대화'를 제의하였으나 오히려 모욕 섞인 비난만을 들어야만 했고 오히려 9월 20일에 국제엠네스티에 의해 홍콩 경찰의 인권탄압 실태를 공개되며 더더욱 입장이 난처해 졌다. 국제앰네스티에 의하면 체포된 시위대에 대하여 고문과 폭력이 자행되고 있으며 전기고문 및 성고문 협박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러한 경찰의 반 인륜적 행위와 캐리 람 행정부의 고압적 태도로 인하여 오성홍기와 중공 당기를 불사르고 시진핑과 마오쩌둥의 사진을 짓밟는 등 반중 색채가 강해졌다.
4분기
10월 3일 부터 10월 5일에 걸쳐서 캐리 람 행정장관과 홍콩 행정부가 사실상의 계엄령인 긴급조치의 발동과 시위대의 복면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인 복면금지법의 실시를 선언한 가운데 중국 인민해방군이 공개적으로 홍콩 시내로 진입하는 등[5] 사회 분위기가 경직되고 있다. 이에 10월 15일에는 미국 하원 본회의에서 하원의원 435명의 만장일치로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 홍콩 시위진압 금지법, 홍콩 인권 상황에 대한 중국 규탄 결의안이 가결되며 미국의 중국압박이 더욱 거세졌다. 미국에 압박에 부담을 느낀 것인지 10월 23일에 테레사 쳉 법무장관이 홍콩 입법회에 출석하여 홍콩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안)을 공식적으로 철회하였다.
11월 1일, 중국공산당이 홍콩에 대한 전면통제 의사를 밝히며 홍콩 시민들의 불안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분노한 시위대가 신화통신 건물을 공격해 파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으며 사망자가 늘어나고 홍콩 경찰의 16세 소녀에 대한 집단 성폭행 의혹이 붉어지고 경찰이 3파 투쟁[6] 시위진압 와중 가슴을 조준하고 실탄을 발포하는 등 시위대의 분노에 기름을 붇는 행동이 다수 일어나 시위대의 반중, 반정부 여론이 한층 더 강해졌다. 그런 와중 주 홍콩 인민해방군이 '도로 청소'를 명목으로 홍콩 행정부의 동의 없이 투입되며[7] 사실상의 무력시위를 단행하자 여론이 더욱더 악화되었다.
11월 18일에는 휴교령이 내려진 가운데에 교통 요충지인 홍콩이공대학에서 농성하는 학생들과 시위대에 대한 경찰측이 최후통첩을 날렸으나 학생들은 유서까지 작성하고 항전의 뜻을 밝혔으며 홍콩 전역의 대학들이 일제히 시위에 들어갔다. 이후에도 홍콩 행정부는 타협다위는 없다는 듯 강경파인 크리스 탕을 경찰청장에 취임시키는 행보를 보이자 11월 20일에 미국 상원이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을 통과시티고 다음날에 미국 하원이 해당 법안의 재의결해 통과시키는 등 미국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또한 21일에는 '함께 점심 먹기' 시위가 일어났다.
11월 24일에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가 실시되었으며[8] 선거 결과 범민주 388석 vs 친중파 58석으로 민주파가 압승을 거두었다. 11월 27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시위대 지지를 발표하였으며 다음날에는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에 서명하여 공식적으로 법안이 효력을 갖게 되었다. 이에 마음이 조급해진 홍콩 경찰측이 이공대 내부로 진입하였으나 이미 이공대 내에 있는 모든 시위대는 이미 탈출한 뒤였으며 결국 29일에 봉쇄를 해제하였다.
12월 1일, 민주화 시위대와 경찰측의 충돌이 경찰측의 수류탄 발포로 인해 재개되었으며 홍콩 경찰이 시위진압에만 신경쓰고 정작 강력 범죄에는 대응하지 못하는 치안 공백 상태가 지속되자 캐리 람 행정장관이 민심 수습책을 발표하였다. 캐리 람 행정부에 대한 만심이 폭락하였음에도 캐리 람 본인에 대한 탄핵안은 찬성 26 대 반대 36으로 부결되어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12월 7일에서 8일에 이틀에 걸쳐서 세계 인권 선언 기념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으며 이는 규모가 축소되었음에도[9] 12월 10일 세계 인권 선언 선언일 당일까지 계속되었다.
한편 12월 4일 미국 하원의 신장 위구르 인권법 통과로 인해 미국의 압력이 더욱 거세졌으나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캐리 람 지지선언을 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에 코웃음 치듯 시진핑이 마카오를 방문한지 이틀 째 되는 날인 12월 19일에 미국 하원 외교위가 티베트 인권법안 통과시키며 시진핑에게 엿을 먹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시위대의 요구 전면 거부한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12월 24일과 25일에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으며 홍콩 경찰측은 이제 관광객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시위대에 총구를 겨누는 등 막장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12월 30일과 31일에도 신년맞이 시위가 대규모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