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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000;" | '''유튜브에 노출 되었던 Freedom Hong Kong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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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000;" | '''홍콩 시위관련 다큐맨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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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span="2"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000;" | '''시위곡 영광이 다시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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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big>反對逃犯條例修訂草案運動<ref>반대도범조례수정안운동</ref> / 反送中大遊行<ref>반송중대유행</ref> / 2019 Hong Kong anti-extradition bill protests</big>'''</big>
<big>'''<big>反對逃犯條例修訂草案運動<ref>반대도범조례수정안운동</ref> / 反送中大遊行<ref>반송중대유행</ref> / 2019 Hong Kong anti-extradition bill protests</big>'''</big>


2019년 6월 9일부터 2024년 9월 15일까지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영광이 다시 오길)|홍콩특별행정구]]에서 진행 되었던 대규모 민주화 시위이다.
2019년 6월 9일부터 2024년 9월 15일까지<ref>관점에 따라 임시정부 수립일인 2021년 12월 10일로 보기도 한다</ref>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 (영광이 다시 오길)|홍콩특별행정구]]에서 진행 되었던 대규모 민주화 시위이다.
== 원인 ==
== 원인 ==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영국 정부는  '''일국양제, 항인치항<ref>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ref>, 고도의 자치 보장''' 이 세가지 조건을 전제로 하여 반환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홍콩 통제와 탄압은 반환이후 점차 거세져만 갔으며 시진핑 정권의 등장 이후로는 홍콩 자치의 근간인 일국양제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불만이 누적 되던 와중에 범죄인 인도법안으로 인해 홍콩 시민의 불만이 폭발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영국 정부는  '''일국양제, 항인치항<ref>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ref>, 고도의 자치 보장''' 이 세가지 조건을 전제로 하여 반환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홍콩 통제와 탄압은 반환이후 점차 거세져만 갔으며 시진핑 정권의 등장 이후로는 홍콩 자치의 근간인 일국양제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불만이 누적 되던 와중에 범죄인 인도법안으로 인해 홍콩 시민의 불만이 폭발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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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 민주화 시위대와 경찰측의 충돌이 경찰측의 수류탄 발포로 인해 재개되었으며 홍콩 경찰이 시위진압에만 신경쓰고 정작 강력 범죄에는 대응하지 못하는 치안 공백 상태가 지속되자 캐리 람 행정장관이 민심 수습책을 발표하였다. 캐리 람 행정부에 대한 만심이 폭락하였음에도 캐리 람 본인에 대한 탄핵안은 찬성 26 대 반대 36으로 부결되어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12월 7일에서 8일에 이틀에 걸쳐서 세계 인권 선언 기념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으며 이는 규모가 축소되었음에도<ref>2019년 12월 10일은 화요일이었다</ref> 12월 10일 세계 인권 선언 선언일 당일까지 계속되었다.
12월 1일, 민주화 시위대와 경찰측의 충돌이 경찰측의 수류탄 발포로 인해 재개되었으며 홍콩 경찰이 시위진압에만 신경쓰고 정작 강력 범죄에는 대응하지 못하는 치안 공백 상태가 지속되자 캐리 람 행정장관이 민심 수습책을 발표하였다. 캐리 람 행정부에 대한 만심이 폭락하였음에도 캐리 람 본인에 대한 탄핵안은 찬성 26 대 반대 36으로 부결되어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12월 7일에서 8일에 이틀에 걸쳐서 세계 인권 선언 기념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으며 이는 규모가 축소되었음에도<ref>2019년 12월 10일은 화요일이었다</ref> 12월 10일 세계 인권 선언 선언일 당일까지 계속되었다.


한편 12월 4일 미국 하원의 신장 위구르 인권법 통과로 인해 미국의 압력이 더욱 거세졌으나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캐리 람 지지선언을 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에 코웃음 치듯 시진핑이 마카오를 방문한지 이틀 째 되는 날인 12월 19일에 미국 하원 외교위가 티베트 인권법안 통과시키며 시진핑에게 엿을 먹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시위대의 요구 전면 거부한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한편 12월 4일 미국 하원의 신장 위구르 인권법 통과로 인해 미국의 압력이 더욱 거세졌으나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캐리 람 지지선언을 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에 코웃음 치듯 시진핑이 마카오를 방문한지 이틀 째 되는 날인 12월 19일에 미국 하원 외교위가 티베트 인권법안 통과시키며 시진핑에게 엿을 먹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시위대의 요구를 전면 거부한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12월 24일과 25일에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으며 홍콩 경찰측은 이제 관광객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시위대에 총구를 겨누는 등 막장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12월 30일과 31일에도 신년맞이 시위가 대규모로 이어졌다.
12월 24일과 25일에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으며 홍콩 경찰측은 이제 관광객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시위대에 총구를 겨누는 등 막장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12월 30일과 31일에도 신년맞이 시위가 대규모로 이어졌다.
=== 2020년 ===
=== 2020년 ===
==== 1분기 ====
==== 1분기 ====
2020년 1월 1일에 연초부터 약 100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신년맞이 시위가 열렸으며 이는 이틑날까지 이어졌다. 또한 1월 2일부터 19년에 선출한 범민주파 구의원들의 임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1월달 초부터 중국 본토에서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퍼지는 일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우한 폐렴]]'''이 확산되기 시작하고 1월 7일에는 홍콩 내에서 의심환자가 나오는 등 괴질에 의한 시위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한편 중국의 또 다른 아킬레스건중 하나인 대만에서 1월 11일에 정부총통 선거<ref>정부통령 선거</ref>와 입법위원 선거<ref>국회의원 선거</ref>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범록 진영의 민주진보당이 압승을 거두고 차이잉원 총통이 재선하면서 중국의 근심이 깊어져 가고 있다.
우한 폐렴이 홍콩 내에서 확산되면서 점차 시위가 힘들어 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이 사실상 홍콩 방역에 손을 놓은 모습을 보이자 1월 29일 홍콩의 민주파 진영 의료업계 종사자 노동조합 소속 15,000여명은 "홍콩 정부가 중국으로의 전면적인 국경 봉쇄 및 중국인의 전면적인 입국 금지를 하지 않을 경우 2월부터 총파업 및 반정부 시위에 들어가겠다"고 경고했다.
2월달 초부터 이어진 우한 폐렴의 대유행으로 인해 대규모 시위가 사실상 거의 사라졌으나 그 대신 중국 당국의 무책임한 방역조치와 캐리 람 행정부의 홍콩-중국 국경이 지속적인 개방에 분노한 의료진 9,000여명의 총파업이 반정부 시위로 발전하였으며 중국(본토)인 입국금지 조치등을 요청하였으나 묵살당했다. 캐리 람 행정부가 경제 부양책을 내놓았으나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은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2020년 2월 25일 현지시각 오후 5시경, '''[[2020년 중국 인민해방군 홍콩 투입 모의 사건 (영광이 다시 오길)|중국 인민해방군의 홍콩 시위 무력진압 시도를 담은 문서가 모바일 메신저 Bridgefy를 통해 유출되어]]''' 홍콩 시위대에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고 있다. 이는 홍콩 행정부 내의 내부고발자에 의한 행위인 것으로 보이며 유출된 내용에 의하면 중국 국무원이 홍콩 행정부에 중국 인민해방군의 홍콩 시위 투입 허가를 요청하였으며 최소 2주에서 최대 1달 이내에 인민해방군이 홍콩에 투입 될 거란 사실에 홍콩 내외를 가리지 않고 큰 충격을 주고 있다.
2월 26일, 중국 인민해방군의 홍콩 시위 무력 진압 시도에 항의하는 시위대의 대규모 집회가 감행되었다. 코로나 19의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약 67만에 달하는 시위대가 운집하였으며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인해 17명의 사상자와 3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또한 범민주파 진영 외에도 일부 온건 건제파(친중파) 진영까지 해당 안건을 비난하는 모습에 홍콩 당국과 중국공산당이 적지않게 당황한 모습이다. 홍콩 당국은 문건 유출 초기에 해당 문건의 존재를 부인하였으나 현지시각 당일 오후 1시경에  홍콩 행정부 청사 내의 한 공간에 있는 모습과 함께 해당 문건의 일부 페이지와 해당 문건이 탁자에 쌓여있는 모습, 그리고 해당 인물의 공무원증이 함께 공개됨으로써 중국 정부와 홍콩 행정부가 인민해방군을 투입하려 했다는 사실이 기정사실화 되었다.
2월 27일에도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에 홍콩 행정부와 캐리 람 행정장관은 2월 27일 현지시각 15시 30분에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문건이 완전히 조작되었다는 내용의 해명에 나섰으나 현지시각 21시 50분에 미국정부가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조사하여 본 결과 그 어떠한 조작의 흔적조차 없었다는 성명을 발표하였고 결정적으로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서명이 발견되어 홍콩 당국의 해명이 거짓임이 들어났다. 이러한 정부의 거짓말에 28일 시위에는 90만에 달하는 시위대가 몰려들었으며 결국 홍콩 행정부는 29일 해당 문건의 존재를 인정하였다.
3월 1일에는 코로나 19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분노한 시위대 120만 명이 홍콩 전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시위를 일으켰으며 민주파 지지세가 강한 샤틴구 일대에서는 경찰이 일시적으로 통제권을 빼앗기고 역으로 밀리는 일이 일어났다. 홍콩 현지언론에 따르면 이번 사태에 대해 시진핑 국가주석이 매우 분노하였으며 강경진압을 명령했다고 알려졌다.
3월 8일부터 실탄과 물대포, 그리고 소규모 장갑차까지 동원된 경찰의 강경진압이 실시되어 민간인권전선 추산 120여명의 사상자와 11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며 강경진압에 대해 크리스 탕 보안장관은 "폭도들로 인해 선량한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으며 그들로 인해 생기는 사회 혼란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여 많은 이들의 빈축과 분노를 샀다. 3월 10일 시위에서 일부 시위대의 투석과 '''화염병 투척'''이 목격되었다.
3월 중순부터 시위의 과격화가 눈에 띄게 진행되었다. 대다수의 시위대에서 죽창과 화염병, 사제 투석기 사용이 목격되었으며 일부 대규모 시위에서는 경찰측에서도 사상자가 나올 정도의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17일 현지시각 오후 5시경 시위대 지지를 다시한번 선언함과 동시에 중국 정부와 시진핑 국가주석을 미친 개, 마약 중독 깡패 등으로 지칭하며 맹비난 했다. 또한 그 여파로 인해 중국 증시가 4% 가량 급락하였다.
3월 20일, 시위대 약 17만 명과 홍콩 경찰이 홍콩 입법회 청사 앞에서 대규모로 충돌하였다. 해당 시위에서 시위대는 사제 대포와 화염병, 죽창등을 동원하였으며 경찰측은 이에대해 사정없는 물대포 발사로 대응하였다. 현지시각 오후 3시경, 홍콩 입법회 시위에서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난 사실이 현지 매체를 통해 확인되었다. 민간인권전선 등의 발표에 따르면 시위가 격화되던 와중 경찰 2명이 시위대가 던진 돌에 맞아 기절하자 일부 경찰이 실탄을 발포했고 결국 이로 인해 부상자 '''2,000여명, 사망자 103명'''에 이르는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났다고 현지매체는 전했다. 반면 경찰 측은 시위대 부상자 12명, 경찰 부상자 5명으로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3월 21일 뉴욕 시간 오전 11시경 미국과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이 중국에 대한 강경 경제제재를 발표하였으며 같은날 우리시간으로 오후 5시에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과 유럽연합이 공동으로 '''중국에 대한 SWIFT 퇴출을''' 선언하였으며 그 여파로 인해 '''중국 증시가 34% 가량 급락'''하였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이에 대해 "이는 미국과 서방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선전포고"라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다음날인 22일에는 대만과 일본, 콜롬비아가 대중 SWIFT 퇴출을 선언하였으며 23일에는 한국과 남아공, 인도 그리고 인도네시아등의 국가가 이에 동참하였다.


중국에서 뱅크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현지 매체가 보도하였다. 3월 27일에 중국이 동중국해 일대에서 무력시위를 감행하였다. 중국 정부가 3월 29일 대중 제재 동참국들에 대한 역제재를 선언하여 우리 기업 상당수가 피해를 입었다. 3월 3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제재에도 중국은 끄떡없다"라며 자국의 경제 상황을 포장하였으나 28일 부터 31일 까지 1달러당 7.72위안 수준으로 폭락하여 웃음거리가 되었다.
==== 2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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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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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공화국 임시정부 (영광이 다시 오길)|홍콩 공화국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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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공화국 임시정부 (영광이 다시 오길)|홍콩 공화국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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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6일 (일) 22:13 판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 펼치기 · 접기 ]
민주화 운동의 상징 흑양자형기
홍콩 시내에서 시위중인 시민들

개요


유튜브에 노출 되었던 Freedom Hong Kong 광고

홍콩 시위관련 다큐맨터리

시위곡 영광이 다시 오길
10년 후 초등학생들이 홍콩 민주화를 위해 시위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이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조슈아 웡 당시 데모시스토 비서장(사무총장)
“저는 경찰과 맞서거나 파괴를 하려고 거리로 나서는 게 아닙니다. 저는 정부의 잘못에 항거하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국민이 자기네 정부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I don't take to the street to clash with police or to destory. i'm here to protest what's wrong with the government. People should not be afraid of their governments. Governments should be afraid of their people.”
뉴욕 타임즈 홍콩의 마지막 편지 中

反對逃犯條例修訂草案運動[1] / 反送中大遊行[2] / 2019 Hong Kong anti-extradition bill protests

2019년 6월 9일부터 2024년 9월 15일까지[3]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에서 진행 되었던 대규모 민주화 시위이다.

원인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영국 정부는 일국양제, 항인치항[4], 고도의 자치 보장 이 세가지 조건을 전제로 하여 반환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의 홍콩 통제와 탄압은 반환이후 점차 거세져만 갔으며 시진핑 정권의 등장 이후로는 홍콩 자치의 근간인 일국양제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불만이 누적 되던 와중에 범죄인 인도법안으로 인해 홍콩 시민의 불만이 폭발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홍콩 범죄인 인도법안

민주화 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홍콩 범죄인 인도법안의 기본적인 요지는 홍콩 내에서 범죄를 일으킨 범죄자를 중국 본토로 송환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 해야 할 점은 중국은 고도의 권위주의-전체주의 독제국가라는 것이다. 즉 중국 공산당을 비난하는 발언을 한 정치인이나 사회·인권 운동가를 합법적으로 중국으로 송환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미 암암리에 중공에 반대하는 정치인들이 본토로 끌려가 고문을 받은 사실이 폭로 된 상황에서 인도법안이 통과되면 사실상 홍콩 내 범민주파 세력은 질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범죄인 인도의 최고 결정권자가 사법부가 아닌 행정부의 수반인 행정장관 이라는 것 또한 큰 문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홍콩 행정장관은 친중파가 절대 다수 일 수 밖에 없는 홍콩 입법회에서 중국 공산당이 낙점한 후보 중에 한 명을 선출하는 구조이기에 중공의 지령을 받은 친중파가 멋대로 민주파 세력을 탄압하는데에 악용 될 수 있기 때문이였다.

경과

3월 31일 최초 시위 이후로 시위 참가 인원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참가 계층도 남녀노소, 심지어 기업인들도 참가하고 있다. 또한 시위도 홍콩섬에서 구룡반도를 포함한 홍콩 전역으로 확산되는 추세이다.

분기별 경과

2019년

2분기

2019년 6월 9일에 최초로 홍콩 경찰 추산 25만, 주최 측 추산 103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시위가 시작되었으며 거센 시위의 열기로 인해 캐리 람 행정부가 법안 처리 연기를 선언하였다. 그러나 법안의 완전한 철패를 선언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중국공산당이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요구하고 스티븐 로 경무처장 명령으로 고무탄과 최루탄이 발사되어 16세 학생이 머리에 부상을 당해 병원으로 이송되고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5] 여론에 불을 지르는 행위가 이어지자 입법회등 주요 정부 건물이 포위당하고 200만의 시위대가 운집하는 등 분위기가 고조되는 추세이다.

3분기

2019년 3분기는 7월 1일에 홍콩 입법회가 점거 당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입법회를 점거한 시위대는 본회의장에서 영국령 홍콩 국기를 휘날리는 등의 행동을 하였으며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부상자가 속출하자 결국 익일에 점거를 해제하였다. 시위가 장기화 되는 가운데 캐리 람 행정장관이 법안의 사망(Dead)를 선언하였으나 철회(Withdraw)를 선언하지 않은, 즉 말장난에 불과하기에 시위대는 시위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중국 본토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삼합회와 정치깡패들을 동원한 백색테러가 실시되었으며 총파업이 진행된 와중에도 캐리 람 행정장관은 강경론을 굽히지 않았다. 8월 12일에는 시위대가 홍콩 국제공항을 점거하면서 공항 기능이 마비되었고 불매운동 등으로 규모를 키워나가는 가운데에 미국이 공개적으로 중공 당국을 비난하며 미중관계가 악화되었다. 이후 인간 띠 잇기등의 평화집회로 국면이 전환되었으나 경찰의 최루탄 발사와 물대포, 실탄 발사등의 강경 진압으로 인해 폭력시위가 재발하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26일부터 평화시위로 돌아왔다. 8월 30일에는 조슈아 웡과 아그네스 차우 등의 여러 민주화 운동가들이 체포된 가운데 다음날인 31일에 최루탄과 형광 물대포를 이용한 유혈진압이 자행되었다.

9월 2일에 홍콩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대학교가 합세한 대규모 동맹휴학이 일어났으며 직장인들이 합세한 총파업이 일어났다. 9월 4일에는 시위대의 숙원중 하나이자 시위의 주 발생원인이었던 홍콩 송환법이 캐리 람 행정장관에 의해 정식적으로 철회되었다. 그러나 다음날 캐리 람 행정장관이 해당 법안 철회가 중공 지도부의 양해와 존중 하에 이뤄졌으며 송환법 철회를 제외한 나머지 4개 사안은 어느 하나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하자 범민주파 야당진영은 캐리 람의 송환법 철회를 거부했다.

이후 캐리 람 행정장관은 시위대에 '대화'를 제의하였으나 오히려 모욕 섞인 비난만을 들어야만 했고 오히려 9월 20일에 국제엠네스티에 의해 홍콩 경찰의 인권탄압 실태를 공개되며 더더욱 입장이 난처해 졌다. 국제앰네스티에 의하면 체포된 시위대에 대하여 고문과 폭력이 자행되고 있으며 전기고문 및 성고문 협박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이러한 경찰의 반 인륜적 행위와 캐리 람 행정부의 고압적 태도로 인하여 오성홍기와 중공 당기를 불사르고 시진핑과 마오쩌둥의 사진을 짓밟는 등 반중 색채가 강해졌다.

4분기

10월 3일 부터 10월 5일에 걸쳐서 캐리 람 행정장관과 홍콩 행정부가 사실상의 계엄령인 긴급조치의 발동과 시위대의 복면착용을 금지하는 법안인 복면금지법의 실시를 선언한 가운데 중국 인민해방군이 공개적으로 홍콩 시내로 진입하는 등[6] 사회 분위기가 경직되고 있다. 이에 10월 15일에는 미국 하원 본회의에서 하원의원 435명의 만장일치로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 홍콩 시위진압 금지법, 홍콩 인권 상황에 대한 중국 규탄 결의안이 가결되며 미국의 중국압박이 더욱 거세졌다. 미국에 압박에 부담을 느낀 것인지 10월 23일에 테레사 쳉 법무장관이 홍콩 입법회에 출석하여 홍콩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안)을 공식적으로 철회하였다.

11월 1일, 중국공산당이 홍콩에 대한 전면통제 의사를 밝히며 홍콩 시민들의 불안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분노한 시위대가 신화통신 건물을 공격해 파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으며 사망자가 늘어나고 홍콩 경찰의 16세 소녀에 대한 집단 성폭행 의혹이 붉어지고 경찰이 3파 투쟁[7] 시위진압 와중 가슴을 조준하고 실탄을 발포하는 등 시위대의 분노에 기름을 붇는 행동이 다수 일어나 시위대의 반중, 반정부 여론이 한층 더 강해졌다. 그런 와중 주 홍콩 인민해방군이 '도로 청소'를 명목으로 홍콩 행정부의 동의 없이 투입되며[8] 사실상의 무력시위를 단행하자 여론이 더욱더 악화되었다.

11월 18일에는 휴교령이 내려진 가운데에 교통 요충지인 홍콩이공대학에서 농성하는 학생들과 시위대에 대한 경찰측이 최후통첩을 날렸으나 학생들은 유서까지 작성하고 항전의 뜻을 밝혔으며 홍콩 전역의 대학들이 일제히 시위에 들어갔다. 이후에도 홍콩 행정부는 타협다위는 없다는 듯 강경파인 크리스 탕을 경찰청장에 취임시키는 행보를 보이자 11월 20일에 미국 상원이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을 통과시티고 다음날에 미국 하원이 해당 법안의 재의결해 통과시키는 등 미국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또한 21일에는 '함께 점심 먹기' 시위가 일어났다.

11월 24일에 2019년 홍콩 구의회 선거가 실시되었으며[9] 선거 결과 범민주 388석 vs 친중파 58석으로 민주파가 압승을 거두었다. 11월 27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시위대 지지를 발표하였으며 다음날에는 홍콩 인권 민주주의 법에 서명하여 공식적으로 법안이 효력을 갖게 되었다. 이에 마음이 조급해진 홍콩 경찰측이 이공대 내부로 진입하였으나 이미 이공대 내에 있는 모든 시위대는 이미 탈출한 뒤였으며 결국 29일에 봉쇄를 해제하였다.

12월 1일, 민주화 시위대와 경찰측의 충돌이 경찰측의 수류탄 발포로 인해 재개되었으며 홍콩 경찰이 시위진압에만 신경쓰고 정작 강력 범죄에는 대응하지 못하는 치안 공백 상태가 지속되자 캐리 람 행정장관이 민심 수습책을 발표하였다. 캐리 람 행정부에 대한 만심이 폭락하였음에도 캐리 람 본인에 대한 탄핵안은 찬성 26 대 반대 36으로 부결되어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12월 7일에서 8일에 이틀에 걸쳐서 세계 인권 선언 기념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으며 이는 규모가 축소되었음에도[10] 12월 10일 세계 인권 선언 선언일 당일까지 계속되었다.

한편 12월 4일 미국 하원의 신장 위구르 인권법 통과로 인해 미국의 압력이 더욱 거세졌으나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커창 국무원 총리가 캐리 람 지지선언을 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에 코웃음 치듯 시진핑이 마카오를 방문한지 이틀 째 되는 날인 12월 19일에 미국 하원 외교위가 티베트 인권법안 통과시키며 시진핑에게 엿을 먹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진핑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시위대의 요구를 전면 거부한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12월 24일과 25일에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으며 홍콩 경찰측은 이제 관광객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시위대에 총구를 겨누는 등 막장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12월 30일과 31일에도 신년맞이 시위가 대규모로 이어졌다.

2020년

1분기

2020년 1월 1일에 연초부터 약 100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신년맞이 시위가 열렸으며 이는 이틑날까지 이어졌다. 또한 1월 2일부터 19년에 선출한 범민주파 구의원들의 임기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1월달 초부터 중국 본토에서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퍼지는 일명 우한 폐렴이 확산되기 시작하고 1월 7일에는 홍콩 내에서 의심환자가 나오는 등 괴질에 의한 시위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한편 중국의 또 다른 아킬레스건중 하나인 대만에서 1월 11일에 정부총통 선거[11]와 입법위원 선거[12]가 실시되었다. 그 결과 범록 진영의 민주진보당이 압승을 거두고 차이잉원 총통이 재선하면서 중국의 근심이 깊어져 가고 있다.

우한 폐렴이 홍콩 내에서 확산되면서 점차 시위가 힘들어 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이 사실상 홍콩 방역에 손을 놓은 모습을 보이자 1월 29일 홍콩의 민주파 진영 의료업계 종사자 노동조합 소속 15,000여명은 "홍콩 정부가 중국으로의 전면적인 국경 봉쇄 및 중국인의 전면적인 입국 금지를 하지 않을 경우 2월부터 총파업 및 반정부 시위에 들어가겠다"고 경고했다.

2월달 초부터 이어진 우한 폐렴의 대유행으로 인해 대규모 시위가 사실상 거의 사라졌으나 그 대신 중국 당국의 무책임한 방역조치와 캐리 람 행정부의 홍콩-중국 국경이 지속적인 개방에 분노한 의료진 9,000여명의 총파업이 반정부 시위로 발전하였으며 중국(본토)인 입국금지 조치등을 요청하였으나 묵살당했다. 캐리 람 행정부가 경제 부양책을 내놓았으나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은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2020년 2월 25일 현지시각 오후 5시경, 중국 인민해방군의 홍콩 시위 무력진압 시도를 담은 문서가 모바일 메신저 Bridgefy를 통해 유출되어 홍콩 시위대에 충격과 분노를 안겨주고 있다. 이는 홍콩 행정부 내의 내부고발자에 의한 행위인 것으로 보이며 유출된 내용에 의하면 중국 국무원이 홍콩 행정부에 중국 인민해방군의 홍콩 시위 투입 허가를 요청하였으며 최소 2주에서 최대 1달 이내에 인민해방군이 홍콩에 투입 될 거란 사실에 홍콩 내외를 가리지 않고 큰 충격을 주고 있다.

2월 26일, 중국 인민해방군의 홍콩 시위 무력 진압 시도에 항의하는 시위대의 대규모 집회가 감행되었다. 코로나 19의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약 67만에 달하는 시위대가 운집하였으며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인해 17명의 사상자와 3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또한 범민주파 진영 외에도 일부 온건 건제파(친중파) 진영까지 해당 안건을 비난하는 모습에 홍콩 당국과 중국공산당이 적지않게 당황한 모습이다. 홍콩 당국은 문건 유출 초기에 해당 문건의 존재를 부인하였으나 현지시각 당일 오후 1시경에 홍콩 행정부 청사 내의 한 공간에 있는 모습과 함께 해당 문건의 일부 페이지와 해당 문건이 탁자에 쌓여있는 모습, 그리고 해당 인물의 공무원증이 함께 공개됨으로써 중국 정부와 홍콩 행정부가 인민해방군을 투입하려 했다는 사실이 기정사실화 되었다.

2월 27일에도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에 홍콩 행정부와 캐리 람 행정장관은 2월 27일 현지시각 15시 30분에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문건이 완전히 조작되었다는 내용의 해명에 나섰으나 현지시각 21시 50분에 미국정부가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조사하여 본 결과 그 어떠한 조작의 흔적조차 없었다는 성명을 발표하였고 결정적으로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서명이 발견되어 홍콩 당국의 해명이 거짓임이 들어났다. 이러한 정부의 거짓말에 28일 시위에는 90만에 달하는 시위대가 몰려들었으며 결국 홍콩 행정부는 29일 해당 문건의 존재를 인정하였다.

3월 1일에는 코로나 19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분노한 시위대 120만 명이 홍콩 전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시위를 일으켰으며 민주파 지지세가 강한 샤틴구 일대에서는 경찰이 일시적으로 통제권을 빼앗기고 역으로 밀리는 일이 일어났다. 홍콩 현지언론에 따르면 이번 사태에 대해 시진핑 국가주석이 매우 분노하였으며 강경진압을 명령했다고 알려졌다.

3월 8일부터 실탄과 물대포, 그리고 소규모 장갑차까지 동원된 경찰의 강경진압이 실시되어 민간인권전선 추산 120여명의 사상자와 11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으며 강경진압에 대해 크리스 탕 보안장관은 "폭도들로 인해 선량한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으며 그들로 인해 생기는 사회 혼란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하여 많은 이들의 빈축과 분노를 샀다. 3월 10일 시위에서 일부 시위대의 투석과 화염병 투척이 목격되었다.

3월 중순부터 시위의 과격화가 눈에 띄게 진행되었다. 대다수의 시위대에서 죽창과 화염병, 사제 투석기 사용이 목격되었으며 일부 대규모 시위에서는 경찰측에서도 사상자가 나올 정도의 시가전을 방불케 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17일 현지시각 오후 5시경 시위대 지지를 다시한번 선언함과 동시에 중국 정부와 시진핑 국가주석을 미친 개, 마약 중독 깡패 등으로 지칭하며 맹비난 했다. 또한 그 여파로 인해 중국 증시가 4% 가량 급락하였다.

3월 20일, 시위대 약 17만 명과 홍콩 경찰이 홍콩 입법회 청사 앞에서 대규모로 충돌하였다. 해당 시위에서 시위대는 사제 대포와 화염병, 죽창등을 동원하였으며 경찰측은 이에대해 사정없는 물대포 발사로 대응하였다. 현지시각 오후 3시경, 홍콩 입법회 시위에서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난 사실이 현지 매체를 통해 확인되었다. 민간인권전선 등의 발표에 따르면 시위가 격화되던 와중 경찰 2명이 시위대가 던진 돌에 맞아 기절하자 일부 경찰이 실탄을 발포했고 결국 이로 인해 부상자 2,000여명, 사망자 103명에 이르는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났다고 현지매체는 전했다. 반면 경찰 측은 시위대 부상자 12명, 경찰 부상자 5명으로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3월 21일 뉴욕 시간 오전 11시경 미국과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이 중국에 대한 강경 경제제재를 발표하였으며 같은날 우리시간으로 오후 5시에 파이브 아이즈 국가들과 유럽연합이 공동으로 중국에 대한 SWIFT 퇴출을 선언하였으며 그 여파로 인해 중국 증시가 34% 가량 급락하였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이에 대해 "이는 미국과 서방의 중국에 대한 경제적 선전포고"라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다음날인 22일에는 대만과 일본, 콜롬비아가 대중 SWIFT 퇴출을 선언하였으며 23일에는 한국과 남아공, 인도 그리고 인도네시아등의 국가가 이에 동참하였다.

중국에서 뱅크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현지 매체가 보도하였다. 3월 27일에 중국이 동중국해 일대에서 무력시위를 감행하였다. 중국 정부가 3월 29일 대중 제재 동참국들에 대한 역제재를 선언하여 우리 기업 상당수가 피해를 입었다. 3월 3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제재에도 중국은 끄떡없다"라며 자국의 경제 상황을 포장하였으나 28일 부터 31일 까지 1달러당 7.72위안 수준으로 폭락하여 웃음거리가 되었다.

2분기

3분기

4분기

2021년 ~ 2022년

21년 전반기

21년 후반기

홍콩 공화국 임시정부

22년 전반기

22년 후반기

2023년 ~ 2024년

23년 전반기

23년 후반기

24년 전반기

24년 후반기

  1. 반대도범조례수정안운동
  2. 반송중대유행
  3. 관점에 따라 임시정부 수립일인 2021년 12월 10일로 보기도 한다
  4. 홍콩인에 의한 홍콩 통치
  5. 단 이는 총상이 아닌 진압 과정중 추락사로 인한 사망이다
  6. 시위 진압이 아닌 공개 진입이다
  7. 학생 수업거부, 노동자 총파업, 소상공인 철시
  8. 실제로 도로 청소와 철도 복구만 하기는 했다
  9. 한국의 지방의원을 뽑는 선거에 해당한다
  10. 2019년 12월 10일은 화요일이었다
  11. 정부통령 선거
  12. 국회의원 선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