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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012169; color:#ffcc00;" | 존호 | ! style="background:#012169; color:#ffcc00;" | 존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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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background:#012169; color:#ffcc00;" | 칸호 | |||
| 엥케 아무굴랑({{만몽 유니코드|ᠡᠩᠬᠡ ᠠᠮᠤᠭᠤᠯᠠ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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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14일 (일) 16:08 판
![]() 브리타니아 제국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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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3세 관련 둘러보기 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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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제국 제3대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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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 초대 황제 프레더릭 3세 | Frederick III | |||||||||||||||||||||||||||||
중화제국 초대 황제 태조 선황제 | 太祖 宣皇帝 | |||||||||||||||||||||||||||||
B.B. 22년 50세 생일 기념으로 촬영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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合天弘運文武睿哲恭儉寬裕孝 敬誠信中和功德大成宣皇帝 합천홍운문무예철공검관유효 경성신중화공덕대성선황제 | |||||||||||||||||||||||||||||
이름 | 프레더릭 조지 필립 아서 화이트로이드 Frederick George Philip Arthur Whitelloyd | ||||||||||||||||||||||||||||
출생 | B.B. 72년 6월 23일 | ||||||||||||||||||||||||||||
대영제국 아메리카 리치몬드 화이트로이드 | |||||||||||||||||||||||||||||
대관식 | B.B. 54년 3월 3일 | ||||||||||||||||||||||||||||
대영제국 아메리카 임페리얼 캐피톨 아일스버리궁 | |||||||||||||||||||||||||||||
사망 | 8년 9월 10일 (향년 80세) | ||||||||||||||||||||||||||||
대영제국 아메리카 임페리얼 캐피톨 헌팅던하우스 | |||||||||||||||||||||||||||||
능묘 | 태건릉(太建陵) | ||||||||||||||||||||||||||||
국적 | ![]() | ||||||||||||||||||||||||||||
재위 | 연합왕국 국왕 | ||||||||||||||||||||||||||||
B.B. 54년 3월 3일 - B.B. 1년 12월 31일 | |||||||||||||||||||||||||||||
대영제국 황제 | |||||||||||||||||||||||||||||
0년 1월 1일 - 8년 6월 23일 | |||||||||||||||||||||||||||||
중화제국 황제 | |||||||||||||||||||||||||||||
0년 1월 1일 - 8년 6월 23일 | |||||||||||||||||||||||||||||
인도제국 황제 | |||||||||||||||||||||||||||||
B.B. 54년 3월 3일 - 8년 6월 23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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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영제국과 중화제국의 초대 황제, 그리고 인도제국의 제3대 황제.
상세
영국 뿐만 아니라 전 서양서를 통틀어서도 가장 뛰어난 군주 중 한명으로 꼽힌다. 대영제국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인 62년간 제국을 통치하였다. 즉위 당시에는 18세의 어린 나이였고, 승하 당시에는 80세였다. 흔히 "황제"로 알려져있지만, 황제로 재위한 기간은 마지막 8년 정도로 그렇게 길지 않다. 그러나 그의 치세동안 영국이 본격적인 제국주의 팽창 정책을 통해 황제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기에 "황제"로 자주 불리는 것이다.
엄청난 공부와 수양을 통해 지식과 교양을 쌓았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직접 전쟁을 지휘하고 원정을 강행한 것에서 보이듯이 대영제국의 군사력을 단련하는데 힘썼다. 진정한 의미에서 문무를 겸비한 황제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청나라의 영향으로 유교 성리학적인 요소를 대영제국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왕위를 재편하고, 서양 뿐만 아니라 동양의 학문 역시 수용하여 영국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한편으로는 적극적인 제국 팽창 정책에 따라 중국, 인도, 아프리카 지역을 식민화하였고, 파운드화 우위 속에서 대영제국의 압도적 경제 우위 체제를 성립하였다. 즉, 세계 패권국으로서의 대영제국은 프레더릭 3세의 치세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애
유년기
연합왕국 국왕으로의 즉위
영토 확장
산업화와 국가의 혼란 속에서
세계전쟁
칭제건원과 말년
개인사
중국을 사랑한 황제
종교
프레더릭 3세의 종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모태신앙인 성공회보다 유교 성리학을 더 신뢰하였을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창조론보다 진화론에 더 관심이 많아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신의 섭리에서 어긋난다할지라고 신민에게 더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학문이라면 학문을 따르겠다고 한 적이 있다. 또한 성경에 써져있는 말이 무조건적으로 이치에 맞거나 도덕적으로 옳지는 않다고도 하였다.
오히려 삼강오륜, 논어 등 중국의 유교 성리학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20대때부터 중국의 학문에 큰 관심을 보여 30대에는 거의 모든 유교 경전을 접하였다. 그는 실리주의자로서 신비주의적인 종교에 의지하기보다는, 스스로 수양하고 지식을 쌓으며, 국가와 신민에게 더 도움이 되는 방법을 추구하고자하였다. 이러한 점 때문에 대영제국 내에서 가장 성리학자에 가까운 면모를 보인 군주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프레더릭 3세의 신앙은 죽기 직전인 76세에 남긴 말에서 잘 드러난다.
짐은 감히 그렇게까지 잘 다스렸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하루하루의 일상을 진실된 마음을 갖고 실제에 도움이 되도록 다스렸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