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대한제국은 동시베리아 전쟁에서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대한제국군 육군의 전력을 대부분 상실하고 만주와 프리모예에서 겨우 방어전을 치르다가, 결국 일전에 알래스카에 폭격을 감행했던 것이 화가 되어 한국 제 2의 도시인 평양에 대공습을 당한 뒤, 내전을 치러 파시즘 세력을 제거한 뒤 정말 최소한의 요건들만 갖춘 조건부 항복으로서 폭주의 끝을 맺었다. 이후 고종은 자신의 부덕함을 이유로 들어 강조에게 양위했고, 더글러스 맥아더의 군대에게 간접적으로 지배받는 환태평양 통감부 체제에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다음 연호인 태시 시대에, 국명으로만 남아있던 대한제국은 역사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대한제국은 동시베리아 전쟁에서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대한제국군 육군의 전력을 대부분 상실하고 만주와 프리모예에서 겨우 방어전을 치르다가, 결국 일전에 알래스카에 폭격을 감행했던 것이 화가 되어 한국 제 2의 도시인 평양에 대공습을 당한 뒤, 내전을 치러 파시즘 세력을 제거한 뒤 정말 최소한의 요건들만 갖춘 조건부 항복으로서 폭주의 끝을 맺었다. 이후 고종은 자신의 부덕함을 이유로 들어 강조에게 양위했고, 더글러스 맥아더의 군대에게 간접적으로 지배받는 환태평양 통감부 체제에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다음 연호인 태시 시대에, 국명으로만 남아있던 대한제국은 역사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요약하자면, 번영과 재기를 상징하는 전자와 후자의 시대인 융희 시대와 태시 시대와 달리'''한국의 폭주와 몰락, 그리고 패전'''을 상징하는 암흑기였다고 할 수 있다. 워낙 시대가 짧다보니 성덕제가 이후 2차 세계대전 시기 한국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각인되는 효과를 낳았다.
요약하자면, 번영과 재기를 상징하는 전자와 후자의 시대인 융희 시대와 태시 시대와 달리 '''한국의 폭주와 몰락, 그리고 패전'''을 상징하는 암흑기였다고 할 수 있다. 워낙 시대가 짧다보니 성덕제가 이후 2차 세계대전 시기 한국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각인되는 효과를 낳았다.
1930년 1월 1일부터 1945년 11월 27일까지를 포함하는대한국, 대한제국의 시대다. 고종 성황제 이영이 황태자에서 즉위한 후 제 3대 대황제로서 대한제국을 다스리던 때에 사용한 연호이며, 1946년 1월 1일 12시 부터는 고종이 상황으로 물러난 관계로 태시가 연호로 사용되면서,한국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동안 유지됐다.
고종이 젊은 나이에 즉위하여 대한제국으로서의 마지막 시기를 보낸 관계로, 제국 시기에 태어난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대금민국 등 만주한치시기를 경험한 노인들에게 옛날 일을 물어보면 '성덕 몇 년'이라 말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으며, 혹은 성덕 몇 년에 태어났는지 물어보면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그보다 젊은 장년세대부터는 태시 시대에 태어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해당 연호에 덜 익숙한 편.
이 시기동안 대황제탄신일은 6월 10일이였다. 이후 고종이 붕어하면서 그의 생일인 6월 10일은 식목일(植木日)로 지정됐었으나, 이후 2005년 4월 5일로 식목일을 재지정했다. 그 후 6월 10일은 성덕기념일로 지정, 현재까지 유지중이다.
시대적인 특징
여러모로 한국인들에게 있어서는 전의 두 시대와 후의 두 시대들에 비해 아픔이 많았던 시대다. 대한제국은 이 시기 전쟁을 통해 제국(帝国)이란 칭호에 걸맞을 만큼 넓은 영토를 지배했지만,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군부와 호국회에 의해 지나치게 사회 분위기가 경직되었던 데다 끝임없이 전쟁을 치르던 성덕 시대보다는, 바로 직전이던 1900~1920년대 융희 시대를 더 살기 좋은 시절로 여긴다.
하지만 대한제국은 동시베리아 전쟁에서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대한제국군 육군의 전력을 대부분 상실하고 만주와 프리모예에서 겨우 방어전을 치르다가, 결국 일전에 알래스카에 폭격을 감행했던 것이 화가 되어 한국 제 2의 도시인 평양에 대공습을 당한 뒤, 내전을 치러 파시즘 세력을 제거한 뒤 정말 최소한의 요건들만 갖춘 조건부 항복으로서 폭주의 끝을 맺었다. 이후 고종은 자신의 부덕함을 이유로 들어 강조에게 양위했고, 더글러스 맥아더의 군대에게 간접적으로 지배받는 환태평양 통감부 체제에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다음 연호인 태시 시대에, 국명으로만 남아있던 대한제국은 역사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요약하자면, 번영과 재기를 상징하는 전자와 후자의 시대인 융희 시대와 태시 시대와 달리 한국의 폭주와 몰락, 그리고 패전을 상징하는 암흑기였다고 할 수 있다. 워낙 시대가 짧다보니 성덕제가 이후 2차 세계대전 시기 한국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각인되는 효과를 낳았다.
매체의 성덕시대
한국
사건
한국 국내외에서 있던 사건 모두 포함한다. 연도 표기는 융희 연호와 서기 병기. 이중에서 몇몇에 해당하는 사건은 아래와 같이 표기하니 참고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