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세계관/정신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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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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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정신체는 겉으로는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완전히 타락 하여, 광기로 행동 한다. <ref>광기로 타락 했지만 계산적으로 행동 하는데, 이는 타락이 영혼과 연관 되기 때문 이다. 이들은 존재적 고통을 겪어도 감흥이 없기에, 영혼이 타락해도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ref> <br>
<br>정신체는 겉으로는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완전히 타락 하여, 광기로 행동 한다. <ref>광기로 타락 했지만 계산적으로 행동 하는데, 이는 타락이 영혼과 연관 되기 때문 이다. 이들은 존재적 고통을 겪어도 감흥이 없기에, 영혼이 타락해도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아름다움과 선함은 공존 할 수 없는데, 심미적 요소에 계속 집착 한다는 사실 자체가 광기 이다. </ref> <br>
정신체가 타락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반발 심리 이다. <br>
정신체가 타락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반발 심리 이다. <br>
자신의 태생적 한계가 낮은 것에 대한 반항적 행동으로 인한 이유 이다. <br>
자신의 태생적 한계가 낮은 것에 대한 반항적 행동으로 인한 이유 이다. <br>

2025년 6월 8일 (일) 22:21 기준 최신판

개요


살아있는 존재를 통칭하는 말.
세상의 허락을 받지 않고 어느날 자신의 마음대로 태어난 존재로,
지구에서는 인류, 인간, 사람 등의 언어로 불리운다.
심적 영역과 비슷한 원리를 지닌 공간에서 활동 하므로, 정신체 라는 가칭을 사용하고 있다.
원래는 가칭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경우 이지만, 정신체적 특성을 잃게 될 확률이 높기에 가칭을 사용해서 임시로 설명하는 방식으로 서술되고 있다.

심리적 특징


매우 영악하며, 지능이 뛰어나다.
타인을 활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 해내는데 탁월하며, 매우 오만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심미적 일수록 우월 하다고 생각하며, 이익을 얻는데 집착 한다.
평범함 과는 매우 거리가 멀며, 정신적으로 타락해 있다.

외형적 특징


매우 성의 없는 데포르메의 모습 이다.
정신체의 외형은 마치 대강 만들어진 듯한 인형의 형상 이다.
이 문장의 의미를 이해 할 수 없다면, 선을 중점으로 보면 알 수 있다.
선을 중점으로 정신체를 보았을 때, 머리는 단순한 원 모양 이고 인체는 큰 외골격의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붓 그리기로 만들어진 외형과 다름 없다는 것 이다.
이들을 볼 때는 머리에 이목이 집중 되는데, 다시 말하면 얼굴을 제외 하고는 제대로 된 신체적 특징이 없으며 기능적인 구조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 한다.
조형적 특징 자체가 없기에, 3차원 공간 상의 존재가 아니며 될 수 없다는 것 이다.
그래서 정신체의 심미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세포학적으로 설명해야 할 정도로, 볼품이 없는 외형 이다. [1]

태생적 한계


정신체 들은 처음 세상에 깨어날 때,
‘정신적으로 허무하니 몸을 가져서, 감각을 겪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며, 이것이 그들이 생겨나게 된 이유 라고 한다.
그러나 처음 존재하게 되었을 때 부터 세상의 허락을 받지 않았기에,
날 때 부터 본래의 세상에서 지내는 것 조차 허용되지 않았으며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게 된 존재 정도로 취급되고 있다.
이들은 최대한 발전하여 진화 한다고 해도, 동물 조차 되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으나 존재하기 전의 기대와는 사뭇 달랐는 듯 하다.

이들이 원래의 세계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번외 세계관/설정 참조.

당연한 결말


시간을 거듭하며, 정신체 들은 독자적인 구성 요소를 갖추게 되었다.
이 말은 즉, 누구도 이들에게 간섭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이다.
사실 원래부터 정신체 들이 어떤 결론을 맞이하게 될지는 너무나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세태가 너무나 심각 했다.
정신체가 혼자서 세상을 하루 만에 망가뜨렸다고 말한다면 누구도 믿지 않겠지만, 경과를 지켜볼 겨를도 없이 그렇게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방안을 가져온들 해결 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고통


7 세계관 에서는 정신체가 겪는 고통을 매우 긍정적인 현상으로 다룬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고통은 일종의 전조 증상 이다.
만약 고통 보다도 더 심한 통증이 있다고 가정 했을 때, 평소에 육체적 고통을 겪어왔던 이들은 통증에 저항할 내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고통을 모르던 자들은, 갑자기 엄청난 통증을 마주했을 때 내성이 아예 없는 상태 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을 움직이지 조차 못하고, 오랜 세월 동안 그것을 극복할 의지력 조차 갖지 못하는 것 이다.
완전한 조율 상태의 고통은 정신적 감각을 더 또렷하게 한다.
정신체는 육체적 고통을 겪을 때, 외부 로부터 방해 받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살필 수 있다.
그래서 7 세계관은 정신적 공허 상태 보다도, 고통을 겪는 상태를 더 희망적인 것으로 해석 한다.

원혼


이 문단은 당연한 결말 에서 이어지지 않는 비정상적인 현상을 설명한 글 이다.
원혼은 죽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뭉쳐진 일종의 사념체 이다.
타인을 살생하게 되면 그 자리에는 원혼이 생성 된다.
정신체는 살생 되기 직전에 절대로 죽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주마등을 보게 된다.
이때 생성된 원혼은 사라지지 않기 위해, 공간의 틈새 에서 버티고 있다.
그래서 정신체 들은 자신의 활동에 방해가 되는 원혼을 인위적으로 제거하고 싶어 한다.
원혼이 계속 쌓이다 보면, 이것은 더이상 공간의 문제가 아니게 된다.
결론적으로는 원혼이 계속 생성되다 보니 공간 자체가 망가졌으며, 이들은 세상 이라는 경계 안에 속하지 못하게 되었기에 어느 곳 에서나 존재 하게 된 것이다. [2]

알아서는 안 되는 것


정신체는 본래의 삶 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알아서는 안 되는 것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 이다.
예를 들어서, 균일한 외골격을 갖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마디로 이들은 본래 자신의 세계에는 없던 인형을 보고, 계속 해서 살생 되고 있는 것 이다.
이렇게 살생 되면 육체적 고통은 거의 없지만, 존재적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다. [3]
존재적 고통이 상위의 고통인 이유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아무리 합쳐도 존재적 고통 만큼 고통스러울 수는 없기 때문 이다.
원래 이들의 삶은 그저 불편하고 불쾌한 정도 였을지도 모른다.
정신체는 편하게 살기 위해 심미적인 것에 집착 했지만, 이러한 행동으로 인해 더 힘든 삶을 살게 된 것이다. [4]

타락


정신체는 겉으로는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완전히 타락 하여, 광기로 행동 한다. [5]
정신체가 타락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반발 심리 이다.
자신의 태생적 한계가 낮은 것에 대한 반항적 행동으로 인한 이유 이다.
그래서 이들은 불쌍한 척을 하며, 어떤 일이 일어나도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으며 억울 하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반항 심리로 인한 연기에 가까우며, 있지도 않은 높은 존재에 대해 의존 하려는 행동 이다.
그러나 세상이 파괴된 것은 정신체의 작은 행동이 예상 할 수 없는 큰 영향을 끼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어쩌다보니 이렇게 된 일이 아니라는 것 이다.
또다른 이유는 심미성에 대한 집착 이다.
이들에게 있어 아름다움은 나약함을 뜻한다. 가만히 있어도 잘 살게 된다는 것 이다.
그래서 이들은 심미적으로 될수록 더 타락하며, 아름다움을 사악함과 연관 지으려는 경향이 있다.
고통은 부차적인 이유 인데, 이들은 기계와 살생을 통해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있기 때문 이다.
심미성을 얻은 정신체는 어떤 결함도 없어 보이며, 착한 척을 하기 시작하면 이러한 사실을 눈치 채는 일은 매우 어렵다.
7 세계관에서 정신체는 허술한 존재가 아니며, 악의 형상화로 묘사 된다.
그래서 단순히 타락 했다고 설명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희망


정신체는 희망에 집착 한다. 이러한 희망은 거의 정신적 결함에 가까울 정도 이다.
그러나 정신체는 심적 영역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는다.
만약 인형 같은 신체가 아니었다면, 지금 보다도 정신이 더 나약 했다면?
자연과 함께 생활 하지 않았다면, 그럴듯한 세계에 속하지 않았다면?
결국 이들은 자신을 착각한 것 이다. 자연과 세계의 희망을 자신의 희망과 혼동 했다는 것 이다.
즉 이들이 지니고 있던 희망은 자신이 진짜 라는 믿음 이다.
그러나 이것은 존재적 고통이 아니다. [6]

정신력


정신체는 자신의 정신력에 대해 크나큰 착각을 하고는 한다.
만약 위기 상황이 온다면, 정신력으로 위기를 극복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정신력으로 위기를 극복 할 수는 없다.
이들이 말하는 정신력은 주로 부정적인 방향의 광기를 뜻하기 때문 이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살생을 하는 것은 광기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체는 고통에 내성도 없거니와 평범한 삶을 살아 왔기에, 정신력으로 위기를 극복 할 수 없는 것이다.
정신체가 살생을 한 순간, 인격체 로서의 모든 것이 끝나게 된다.
격이 없어지면 되돌릴 수 없는 것을 넘어서, 살생을 행한 이는 절대 보통의 존재 로서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정신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는 생각은 오만 이며, 일종의 편법 이다.
세상이 파괴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 기에, 정신력 만으로는 해결 될 수 없다.

  1. 세포를 예시로 든 것은 그만큼 입체적이지 않다는 뜻 이다. 절대적인 크기가 중요하지는 않으며, 공간 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중요하다. 공간 상에서 단순한 도형 이어서는 안 되며, 입체적인 형상 이어야 한다는 것 이다.
  2. 이것이 여러 세상을 넘나들게 되었다는 것을 뜻 하지는 않는다. 또한 심적 영역의 육체적 고통은 공간 으로부터 비롯 되므로, 공간통을 피하기 위해서 원혼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3. 존재적 고통을 겪었다는 것은, 육체와 존재 사이의 괴리를 겪었다는 것을 의미 한다. 그러나 생각 해봐야 할 점이 있다. 존재적 고통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이 경우는 존재적 고통 이라고 하기에도 어려운 분야 라는 것 이다. 이들은 자신의 한계에 대한 절망에 가까운 감정으로 인해서, 형상을 잃었기 때문 이다. 이유 조차 매우 악하다는 것 이다. 그래서 이것은 존재적 고통 이지만, 그럼에도 이미 존재적 고통에 속하지 않는 자체적인 고통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 한다.
  4. 살생은 육체적인 고통의 과정을 통해 일어나므로, 존재적 고통을 겪을 때도 살생의 과정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나타날 수 있다. 정신체가 심미적 요소를 활용 할 수 있다는 것 이다. 만약 이들이 즉흥적인 행동으로 상대방을 곤란하게 할 때가 있다면, 이러한 경우를 의심 해볼 수 있다.
  5. 광기로 타락 했지만 계산적으로 행동 하는데, 이는 타락이 영혼과 연관 되기 때문 이다. 이들은 존재적 고통을 겪어도 감흥이 없기에, 영혼이 타락해도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아름다움과 선함은 공존 할 수 없는데, 심미적 요소에 계속 집착 한다는 사실 자체가 광기 이다.
  6. 자신 만의 독립적인 체계가 있다는 것은, 특별함이 아니다. 누군가 관여할 필요가 없고, 관여 할 수도 없는 것은 이 자체성 때문 이다. 자신 만의 감정 체계를 지니고 있기에 마음의 문제 또한 해결 될 수 없으며, 고통의 체계 조차 같지 않다. 정신체는 마음의 문제로 인해서, 어떤 장소 에든 적응을 할 수가 없어한다. 자신이 적응하는 것은 어려우니, 오히려 세상이 자신에게 적응 하기를 바란다는 것 이다. 심적 영역 에서는 혼란스러운 과정 에서도 나름의 질서가 있었지만, 이조차 이상적인 상황 이다. 그러나 혼자 만의 독립적인 환경 에서는 이렇듯 모든 일이 그럴듯 하게 진행 될 수가 없다. 그래서 첫 행동을 오판 하게 된 순간, 모든 것이 끝난 것과 다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