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돌로 작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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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의 일부 | |||||||
![]()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페라에 진입한 그리스 군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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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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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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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
약 51,300명 | 약 35,000명 | ||||||
피해 규모 | |||||||
1,130명 사망 448명 부상 |
1,335명 사망 341명 부상 |
단돌로 작전(그리스어: Επιχείρηση Δάνδολος)은 그리스를 주축으로 한 영국, 이탈리아 왕국, 프랑스 등 제1차 세계 대전의 연합국이 비잔티움을 점령하고자 벌인 작전이다. 암호명 '단돌로'는 제4차 십자군 당시 동로마 제국 침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인 엔리코 단돌로의 이름을 딴 것이다.
20세기 초 그리스의 대외 정책의 기조는 위대한 이상(그리스어: Μεγάλη Ιδέα)에 의거한 국민 국가를 세우는 것 이었고, 이는 영국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총리가 약속한 사항이었다. 산스테파노 조약 이후 비잔티움은 독립에 성공하였으나, 러시아 제국과 발칸 동맹 일부를 제외한 국가들은 그리스의 손을 들어 주어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수년이 지나 1918년 11월 12일 프랑스를 주도로 한 연합군이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무드로스 정전 협정의 내용을 명분으로 비잔티움을 침공하였다. 초반의 비잔티움군은 국지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나, 마누일 6세 팔레올로고스가 항복 명령을 내리면서 작전은 한 달이 채 안 걸려 종결되었다. 마누일 6세는 스스로를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포로'라고 표현하며 연합군의 출궁 요구를 거부하였는데, 이는 그리스-터키 전쟁으로 이어지는 단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