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련

리반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8월 10일 (토) 17:34 판

후한말·서진시대 국령
201 ~ 300
단주국령
(丹州國領, 201~300)
1대 2대 3대 4대 5대
무련
(201~231)
무휴
(231~234)
무란
(234~279)
이국
(279~281)
여원
(281~300)
초대 단주국령
무련 / 흥문왕
武憐 / 興文王
시호 흥문왕(興文王) / 단주대왕(丹州大王)
성씨 / 휘 무(武) / 련(憐)
재위 기간 201년 4월 3일 ~ 231년 1월 17일

무련(중국어: 武憐, 165년 3월 15일-231년 1월 17일) 또는 흥문왕(중국어: 興文王)은 후한(後漢) 말부터 삼국시대(三國時代) 오나라(吳國)의 인물이다. (字)는 형랑(炯浪).

산명 왕조(山鳴王朝)의 명제(明帝)는 그를 '흥문단주대왕'(興文丹州大王)으로 추존했다. 단주(丹州) 일대를 처음으로 장악한 권력자였으나, 손권(孫權)이 파견한 제갈직(諸葛直)과 위온(衛溫)이 이끈 오나라 군대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생애

무련은 165년, 단주에 위치한 무산현(霧山縣) 시월만(示月灣)에서 태어났다. 단주는 당시에는 '이주'(夷州)라고 불리던 대만(臺灣) 옆에 붙어 있던 섬이었고, 교주(交州)와 함께 한나라(漢國)가 제대로 지배했던 시기가 전무했던 곳이었다. 그래도 진나라 관리였던 조타(趙佗)가 남월(南越)을 세우는 등 점차 한자 문화권의 영향을 받던 교주와는 달리, 단주와 이주는 1세기에 이르러까지 부족들이 나뉘어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는 원시 사회가 유지되었다.

본래 무련의 가문은 월국(越國) 낭야(琅瑘)가 본관이었는데, 그의 선조가 왕망(王莽)이 전한(前漢)을 멸망시키고 신나라(新國)가 세워지던 혼란기를 피해 단주로 건너오게 되었다. 그의 가문 사람들은 여러 부족들에게 문자를 비롯하여 철기·우경 등의 선진 문물들을 전달하면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그의 대에 이르러서는 단주 일대를 아우르는 통치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