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야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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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신질서의 황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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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부(府)
釜山府 (ふさん ふ)
후산부 | Pusan Pref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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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청 소재지 게이조시 쇼마치구 메이지초메 31-0
국가 일본
지역 게이쇼
최대도시 후산시
면적 1,431.08km2
하위 행정구역 21시 1정[1]
인구 13,192,258명[2][3]
인구밀도 8,032.28명/km2
GDP(명목) $7,849억 8,197만
1인당 GDP $49,846
시간대 GMT+09:00
부지사 자민 하야시 코타카
(林亨埈, 재선)
부의회
(112석)
자민 49석
시민 42석
입헌 12석
공명 2석
무소속 7석
중의원
(24석/650석)
자민 12석
시민 10석
입헌 2석
참의원
(12석/384석)
자민 5석
시민 4석
입헌 2석
공명 1석
상징 부화 동백꽃
부목 동백나무
부조 갈매기
ISO 3166-2 JP-48
도메인 .pusan.jp, .pu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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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일본 조선 반도에 위치한 도시. 도쿄에 이은 일본 제2의 도시이다. 더해서 아시아 전체에서 제2도시기도 하다. 게이조시를 중심으로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뻗어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인구는 총 1,319만명 가량.[4] 광역 인구까지 합치면 2,800만명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권중 하나로 분류된다. (게이키 광역권)

역사

역사적으로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조센 반도에 위치한 조선의 도읍이었고, 이 당시에는 한성으로 불렀었다.

약 500년간 조선의 수도로서 기능한 일본 7대 고도[5]의 하나다. 그러다가 1910년대 일한합방조약을 통해 조선 왕조가 멸망하자 게이키도에 속하게 되었으며 1952년 내지편입 직후 게이키도에서 독립해 독자적 행정구역인 게이조부로 기능하였다.

현재와 같은 행정권이 부여된 것은 1946년 칙령으로 조선 반도 지역 내의 참정권이 부분적으로 인정되고 1994년 지방자치제가 실행되어 부지사를 직선으로 뽑게 된 이후이다.

1980년대, 쇼와 버블경제 시기에는 뉴욕이나 베를린또 뛰어넘고 세계 제2도시라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현재도 도쿄, 뉴욕, 게이조, 베를린, 로마 등 세계 5대 도시의 하나로 꼽히는 대도시이다.

1988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 되기도 하였었으나, 1987년 유럽에서를 시작으로 1988년 대아대전 등 세계가 전쟁에 휩싸이는 바람에 취소되었다. 다만 보상 차원에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거쳐 이후에 1996 게이조 올림픽을 개최할수 있었다.

정치

민주화 이후에는 과거 군국주의 체제에 대한 반감으로 일본사회당 계열 진보 야당의 당세가 강력했던 지역이었다. 97년 자민당 창당 이전에는 말할것도 없었으며 이후에도 게이쇼, 고겐, 간쿄 등 다른 조센반도 지역이 자민당 지지로 돌아섰음에도 게이조만큼은 리버럴 성향이 매우 강한 도시였다.

그러나 사회당 내란 사태로 혁신계 전반에 큰 타격을 입은데다 2010년에 게이조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진 기노시타 에이센이 게이조 지역주의의 시민 리그를 창립하면서 혁신계 야권은 급격히 지역에서 축소되고 시민 리그가 독식하는 체제가 이어졌다. 대체로 시민 리그가 독식하고, 자민당과 입민당이 제1야당 다툼을 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중국의 부상으로 안보 위협론이 전국에 확산되는 상황에서 게이조도 대도시로서 우경화를 피해가지 않았다. 자민당은 게이조의 진보세가 안보 위협론으로 말미암아 흔들리기 시작하자 집중적으로 공략했고, 2019년 통일지방선거에서 입헌민주당 하야시 모토아츠(19.34%)와 표가 갈리기는 했으나 3선에 도전하는 현직 부지사 기노시타 에이센(35.19%)이 자민당의 유력 여성 정치인 마쓰시마 교다마(36.42%)에게 접전패한 초유의 결과가 나왔다. 또한 부의회도 최초로 자민당이 112석 중 43석으로 시민 리그와 동수를 차지했다.

2021년 중의원 선거에는 게이조의 의석 24석 중 자민당이 12석을 가져가 10석의 시민 리그를 누르고 절반을 차지했다.

2023년 통일지방선거에는 더욱 무난한 득표율(39.64%)로 마쓰시마 교다마가 재선 하였으며[6] 부의회는 자민당 49석으로 시민 리그보다 많아 제1당을 가져갔다.[7]

이 이후로는 게이조는 자민당이 근소 우세한 경합 지역로 통하고 있으며, 안보 위협론이 정치 성향을 크게 바꾼 대표적인 사례이다. 물론 야권 득표를 합하면 자민당을 크게 웃돌지만, 이는 기노시타 에이센의 게이조 내에서의 네임밸류가 강해서라고 할수 있다. 총선에서는 여지없이 시민 리그와 입민당을 합해야 자민당과 같은 의석이 나오는 것만 봐도 알수 있다.

참고로 가와미나미 3구의 경우는 자민당의 초강세 지역이다. 이곳은 게이조가 야권의 텃밭이던 시절부터 부유 지역으로서 자민당 지지세가 높았고 현재는 거의 농촌지역 수준의 자민당 득표율을 보여준다.

행정구역

지역 구분은 일본 정부의 <2022년 기준 게이조부 지역 분류>를 기준으로 한다. 수부인 게이조시를 포함하여 21시를 두고 있다. 게이조시의 구를 쪼개면 37개의 하위 행정구역이 있다.

게이조시

파일:게이조시.jpg
게이조시 시역의 확장 역사 지도

대체적으로 게이조라면 이 게이조시만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도쿄도 도쿄도 구부의 23구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게이조시는 1953년 당시 갯벌 지역이던 간가와 이남 지역을 재개발을 목표로 대규모 편입함으로서 최종적으로 시역 확장이 완료되었다.(간가와 이남 개발 사업)[8] 게이조시는 다시 1936년까지의 식민 시대 게이조부(현 게이조부와 다르다)의 8구[9]를 조테이쥬리, 이후 편입된 지역을 미나미가와로 통칭한다.

더욱 세부적으로 나누면 게이조시 전체에서 조센왕조 시기의 한성(칸조) 성곽 내 지역, 즉 원조 게이조 지역은 1914년 게이조. 즉 쇼마치, 타츠야마, 쥬구 정도로 볼수 있다. 이 3개 구는 칸조(漢城) 3구라고 하는 게이조의 유서깊은 지역이다.

그렇기에 게이조의 주요 행정 중심지는 다 이곳에 소재한다. 경제적 중심지는 미나미가와이기에 행정 / 경제가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이곳에는 고카문, 게이조부청(구 조선총독부) 뒤뜰에 위치한 조센 왕조의 정궁 게이조고쿄, 도다이문, 난다이문, 기타다이문 등 조센 도읍 칸조의 4대문(3대문) 등 문화재도 위치해있다.[10]

여담으로, 고카문 광장에는 1955년 지어진 메이지 덴노의 동상이 존재한다. 이는 당시 정부가 고카문광장을 대대적으로 조성하는 과정에서 미관을 위한 목적, 또 황실에 대한 경의의 목적으로 건설하였다. 정한(征韓)의 영웅 도요토미 히데요시 태합과 메이지 덴노 중 어느 것을 세울지 논쟁이 있었지만, 조선인도 내지편입이래 같은 국민인데 정벌자의 동상을 세우는 건 부적절하다는 의견에 따라 메이지 덴노로 정해졌다고 한다.

1936년 게이조. 즉 세다이문구, 도다이문구, 에이호구, 마호구, 조토구 등 5개 구까지는 그래도 칸조 3구에 이어 정통 게이조로 보는 경향이 강하나, 이후 1949년과 1953년에 편입된 미나미가와 지역은 기본적으로 이들과는 어느정도 이질적이다.

게이조시 산하의 구는 총 17개이며, 모두 자치구가 아니다.

게이조시의 인구는 총합 6,445,419명으로 도쿄도 구부의 1,020만명에 이어 일본 제2의 도시이며, 게이조부 전체에서는 약 절반을 조금 넘게 차지하는 명실상부 게이조부의 중심지이다. 또한 제3도시인 오사카(2,880,091명)의 2배를 넘는다.[11]

구명 인구 비고
쇼마치구 (鍾路区) 159,417명 [12]
세다이문구 (西大門区) 336,231명
도다이문구 (東大門区) 371,149명
쥬구 (中区) 141,312명 [13]
에이호구 (永登浦区) 414,734명
타츠야마구 (竜山区) 243,608명
조토구 (城東区) 307,361명
마호구 (麻浦区) 413,697명
히로츠구 (広津区) 373,734명
나카나미구 (中浪区) 212,155명
가와히가시구 (江東区) 519,167명
가와미나미구 (江南区) 604,873명
미즈쿠사구 (瑞草区) 435,677명
마츠사카구 (松坡区) 724,166명
아카가네구 (銅雀区) 418,769명
칸가쿠구 (冠岳区) 511,956명
에리가와구 (衿川区) 257,463명

구명의 경우 음독과 훈독 중 발음이 더 자연스러운 쪽으로 읽는다. 원래는 열도와의 구분을 위하여 모두 음독으로만 읽었으나, 내지편입 이후 1953년에 바뀌었다.

게이진(京仁) 지역

파일:게이진.jpg
1939년, 일본 정부의 게이조 확장계획 지도

본 지도에서 검정색 라인은, 본래 게이진으로 편입될 예정이었으나 후에 게이조시 직할로 편입된 지역과 편입이 무산된 지역을 의미한다.

1952년, 게이조의 부 승격과 함께 게이조시와는 별개로 게이진(京仁)이라는 명칭으로 게이조부에 편입된 지역이다. 게이진이라는 명칭은 게이조와 진센을 잇는 지역이기에 붙여졌다.

이 목적은 당시 일본 제국이 물자 수송을 원할히 하기 위하여 내륙 도시인 게이조를 해양도시화 하려고 지나전쟁 때인 1939년 처음 입안했다. 그러나 당시 진센부(현 진센현)의 반발이 매우 심하여 1940년 취소됐다.

그러나 대동아전쟁 승전 직후, 공영권의 물자를 수송할 거대 무역항을 원했던 정부는 다시 게이진 지역의 편입을 추진했다. 결국 1952년, 게이조부의 승격 시에 게이조시가 아닌 게이조부의 부역(府域)으로서 편입되었다. 이곳이 바로 게이진 지역이다.

광활한 평야를 가진 게이진 지역은 급격한 성장을 이뤄낼수가 있었고, 1960년대에 이미 게이진의 주요 도시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대규모 번화가로 성장했다.

일본의 숙원 사업이었던 게이조항(京城港)또한 1967년 완공되었으며, 공영권에서 대부분의 물자가 게이조항을 통하는 수준으로 거대했었고 이는 현재도 도쿄만에 필적하는 거대 무역항이다.

총 15개의 시(市)를 두고 있고 인구는 476만 1,193명에 달한다. 644만 명인 게이조시에도 밀리지 않는 수준이며, 게이조시와 합하면 1120만 명이라 게이조부 인구의 85%를 차지, 사실상 게이조시와 게이진 지역이 게이조부의 핵심이다.

대체로 게이조의 대형 번화가 미나미가와 지역에 이어 조선 반도 내의 제2 번화가 밀집지로 통한다.

시명 인구 비고
코메이시 (光明市) 290,197명
히가와시 (陽川市) 446,028명
미즈스미시 (水炭市) 172,321명
가와니시시 (江西市) 573,058명
고토시 (吾丁市) 286,011명
타마야마시 (玉山市) 252,632명
스라이시 (蘇來市) 529,715명
카츠라히시 (桂陽市) 290,266명
후라이시 (府内市) 235,493명
마토스나시 (素砂市) 524,873명
아오아미시 (靑羅市) 502,945명
쿠로아카시 (黔丹市) 193,645명
토미히라시 (富平市) 464,138명
나가무네시 (永宗市) 163,948명

미아세(道芦城) 지역

파일:미아세.jpg
미아세 지역

치미네시 (道峰市), 시하라시 (芦原市), 세이호쿠시 (城北市)의 앞 글자를 따와 미아세 지역이라고 부른다.

게이조부를 이루는 세 축의 마지막 지역으로, 고도로 개발되어 마천루와 주택으로 가득 찬 게이조시나 게이진 지역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번화가의 크기도 작고 녹지가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게이조시의 너무 높은 물가와 땅값을 감당하지 못한 시민들이 다른 현으로 이주하는 대신 미아세 지역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게이진 지역 또한 게이조시보다는 나을 뿐 심한 물가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총 5개 시로 이루어져있다. 인구는 198만 5,646명이 거주하여 게이조시나 게이진 지역보다는 적지만 상당한 수준이다.

시명 인구 비고
미치미네시 (道峰市) 306,948명
아시하라시 (芦原市) 498,213명
세이호쿠시 (城北市) 425,602명
온헤이시 (恩平市) 466,770명
교도시 (教徒市) 288,113명

경제

게이조시의 경우 구 조테이쥬리가(조테이쥬리 8구) 1960년대까지 경제적 중심지의 역할을 해왔으나, 1950년대부터 시작하여 간가와 이남 갯벌 지역이 대대적으로 매립되고 개발되고, 간가와 이남이 게이조시 시역으로 편입되면서 경제적 중심지도 점차로 간가와 이남으로 이동했다. 간가와 이남의 가와미나미구, 미즈쿠사구, 마츠사카구 등 "가와미나미 3구"는 도쿄에 비견될 정도로 일본 최대의 번화가로 개발되었다.

간가와의 폭이 1km에 달하여 양자강에 비견될 정도로 넓기 때문에 간가와 이북(기타가와)과 이남(미나미가와)의 경제가 분리되어있는 면이 있다. 다만 정부의 적극적인 대중교통 공사와 교각 건설, 특히 쇼와 버블경제 시기의 대규모 기타가와 재개발로 기타가와 지역과 미나미가와 지역의 격차는 1990년대~2000년대 이후부터는 많이 줄어들었다.

대기업 겐다이(現代), 센조(鮮京), 신세카이(新世界)의 본사가 위치해있기도 하다. 이들 그룹은 모두 경영 일가가 조선계이다. 본래 미쓰보시(三星)도 이곳에 소재했으나 2020년에 리노이에 아루 신임 회장[14]의 의지로 도쿄로 이전하였다.

교육

교육 역시 매우 발달되어있다. 먼저 구 제국대학 중 하나이고 동양 문화의 권위로서 일본 3대 명문대의 하나인[15] 게이조대학(京城大学)이 소재해있다.

사립 대학 중에서도 내로라하는 명문 대학들이 즐비하다. 대표적으로 엔세이대학(延世大学), 리카여자대학(梨花女子大学), 후세대학(普成大学), 메이리대학(明倫大学), 도코쿠대학(東国大学), 니시가와대학(西江大学), 칸요대학(漢陽大学) 등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학들이 있다.

이들은 식민지시대의 전문학교가 시초이며, 1946년 이전까지는 대학 승격이 허용되지 않았으나 조센과 다이완 의무교육이 실시되면서 모두 대학으로 승격 조치되었다.

게이조의 대학들은 열도에서도 취학할 정도로 수준이 높다. 실제로 게이조대학의 학생 중 약 30%가 열도, 10% 가량은 대만 출신이다.


  1. 게이조시의 17개 구를 분리한다면 총 37개(게이조시 1개는 제외)의 기초단위 행정구역이 있다.
  2. 추계 인구 2021년 7월 1일 기준
  3. 이중 게이조시의 인구는 약 644만명 수준이다.
  4. 도쿄도는 1,440만명 가량.
  5. 도쿄(에도 막부 ~ 현재), 교토(헤이안 시대), 나라(나라 시대), 가마쿠라(가마쿠라 막부), 게이조(조선왕조의 수도), 게이슈(계림왕조의 수도), 가이조(고려왕조의 수도)
  6. 기노시타 에이센은 33.43%을 기록했다. 입헌민주당은 하야시 모토아츠가 성추문으로 자살한 이후 노다 나가요시를 공천하였으나 역시 3위인 18.21%로 마감했다.
  7. 참고로 부의회는 자민 49 + 공명 2 + 보수 무소속 2 등 범보수가 53석을, 시민 42 + 사회 12 + 진보 무소속 5 등 범진보가 59석을 차지하여 근소한 여소야대이다.
  8. 본 지도에는 1963년으로 표기되어 있다.
  9. 쇼마치구, 세다이문구, 도다이문구, 추구, 에이호구, 타츠야마구, 마호구, 조토구
  10. 세다이문이 없는 이유는 1915년 정부가 게이조 개발 과정 전차 부설로에 세다이문이 걸리자 철거했기 때문이다.
  11. 다만 시역이 오사카보다 2배 이상 넓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오사카도 오사카부 전체로 본다면 900만 명이 넘어간다.
  12. 게이조부청 소재지
  13. 게이조시청 소재지
  14. 아버지인 리노이에 다케시 회장이 2014년부터 쓰러져 직무를 못 봐서 실권은 이미 그에게 있었으나, 회장이 된건 2020년 리노이에 다케시 회장의 사망 시이다.
  15. 도쿄대학, 교토대학, 게이조대학을 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