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環境省 | Ministry of the Environment | ||||
1997년 1월 3일 | ||||
![]() | ||||
환경청 | ||||
카치 시로쿠사 (可知 白草) | ||||
지속가능개발위원회(持続可能開発委員会) | ||||
4,288명(외국 제외) 2,011명(지속가능개발위원회) |
개요
환경성(環境省, Ministry of the Environment)은 일본의 중앙성청이다. 1997년 1월 3일 중앙성청 개편으로 탄생했다. 전신은 환경청이다.
환경성 설치법 제3조에서는 '지속가능한 개발의 달성, 지구 환경의 보전, 오염 방지, 자연 환경의 보호 및 유지, 원자력의 연구, 개발 및 이용에 있어서 안전 보장을 꾀하는 것을 임무로 한다.'고 임무를 규정하고 있다.
상세
환경법 패키지
1997년 나구모 시노부 총리의 중앙성청 개편으로 환경성으로 승격되었다. 당시 열풍당 간사장인 아테나 나우시카 전 총리의 친환경, 생태주의 성향이 적극적으로 반영되어 전격 결정되었다. 이후 환경성 관료들의 주도로 1999년 환경법 패키지가 제정되었다. 원래는 1996년 집권 직후부터 환경관련법의 제정에 박차를 가했지만, 아직까지 열풍당이 참의원에서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야당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었다.[1] 1998년 참원선에서 압승한지 6개월만에 일본의 환경정책, 더 나아가서는 글로벌스탠다드가되는 법이 만들어졌다.
환경법 패키지는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대체연료법, 탄소회계법, 탄소세 제정이 그것인데, 탄소세 제정의 경우 당 내에서조차 반발이 커서 통과가 무산되나 했으나 결국 통과되었다. 탄소세 부과의 통과는 열풍당 내 우익 의원들을 자극했고, 결국 열풍당은 세기말의 분당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환경 패키지 중 하나인 탄소세의 시행은 법제화는 하되 시행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지면서 흐지부지된다.
대체연료법
대체연료법은 수소연료전지의 상용화를 위한 수소 인프라 구축과 기술개발의 지원, 6대 대체전력원[2] 확충, 대체에너지 100% 미달성 기업의 수입품 대한 화석연료세 부과로 구성되어 있다. 수소연료전지차(FCEV)와 전기차(EV)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고, EV 개발의 일환으로 2000년대 중반 테슬라에 대한 일본금융권의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졌다. 전기차는 2002년, 수소차는 2003년 초기모델이 등장하며 상용화가 시작되었다.
2000년 화력발전비중이 65%였지만 지속적인 대체발전 비중을 늘려 2010년에는 50%, 2019년에는 32%로 크게 낮아졌다. 2010년대 후반까지는 원자력의 공헌도가 가장 컸다. 2019년 수력과 원자력을 제외한 대체에너지의 경우 전체 발전 비중의 33%를 차지해 처음으로 화력발전 비중을 넘어섰다. 이로써 재생에너지는 수력, 원자력, 화력을 제치고 일본의 제1 발전원이 되었다.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원자력과 양강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탄소회계법
탄소회계는 재무제표를 작성하듯이 탄소를 배출한 내역을 집계하여 발표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나무를 심는다던지, 탄소를 포집한다던지 하는 경우도 회계에 포함되어 그만큼 탄소배출량이 줄어든 것으로 간주한다. 탄소회계의 경우 당장 기업들이 탄소를 측정하는 방법이나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저감해야할지 고민도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2002년까지 유예 기간을 두었고, 2002년부터 서비스업 등에 1종 탄소회계를 시범 시행한 후, 2005년 전면 시행되었다.
탄소회계는 생산기업이 직접 배출한 탄소만을 집계하는 1종 탄소회계, 생산기업이 사용한 전력원을 탄소회계에 포함하는 2종 탄소회계,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모든 탄소를 집계해야하는 3종 탄소회계로 구분되는데 2005년에 전면 시행된 것은 1종 탄소회계로 2008년 2종 탄소회계가 시행되었으며, 2015년 부터는 3종 탄소회계를 적용 중이다. 탄소회계법이기 때문에 분기에 한 번씩 탄소회계 결과를 공시해야한다. 이를 지키지 못하는 기업은 금융제재를 받는다.
2003년까지는 금융제재는 면제되었지만, 2004년부터 봐주는 것 없이 시행되어 탄소회계를 공시하지 않는 기업의 경우 일본 금융 시스템에서 각종 제재를 받는다. 대출이 안나오는 것은 둘째치고, 보통 상장기업의 경우 외부감사를 통해 일반재무제표를 공개하는데 외부감사 부적격 판정을 내려 아예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못하도록 막을 권리가 있다.[3] 또한 3대 금융재벌 간의 녹색금융협의회가 출범하여 친환경 기업에 자금을 우대하는 민간차원의 노력이 시작되면서 탄소회계는 빠른 시간 안에 정착되었다.
외국의 반발
대체연료법과 탄소회계법이 일본과 전 지구적 환경을 위한 중대한 발걸음인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외국 기업들은 일본의 이러한 행태가 비관세장벽의 건설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대체연료법의 화석연료세와 탄소회계법의 금융제재가 너무 강력하다는 의견이 많다. 화석연료세의 경우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수출하려는 기업이나 수입하려는 기업 또는 개인이 상품을 하나 생산하는데 이용된 전력을 계산하여 증빙해야했는데, 이러한 방식이 사실상 외국기업에 정책인프라 구축비용을 떠넘기고, 일본시장에서 외국기업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탄소회계 역시 법은 일본에서 시행되었는데, 글로벌가치사슬이 활성화된 현대에 와서 3종 탄소회계를 위해서는 해외 공급망의 탄소까지 집계해야하므로 해외에서도 탄소회계를 실시해야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몇몇 개발도상국에서는 주권 침해라고 반발하는 헤프닝도 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비관세장벽의 건설이라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웠다. 2000년을 기준으로 일본의 GDP는 미국에 필적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일본의 정책을 무시하기 어려웠다.
결국 미국과 협상을 통해 2005년 3종 탄소회계의 시행을 10년 유예하기로 결정하면서 어느정도 일단락 되었다. 이와 관계없이 2015년 파리 기후협약이 체결되면서 일찍이 일본의 기준에 맞춰서 구조전환에 성공한 기업들은 시장에서 치고나갈 기회가 되기도 했다.
환경세 시행
1999년 시행이 유에된 탄소세의 경우 이이즈카 카스미 총리가 2003년 소비세를 폐지한 후 줄어든 세수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2004년 전격발표된 환경세는 탄소세를 포함한 형태로 유예기간 없이 시행되었다. 소비세가 폐지된 당시 당연하게도 상품 가격이 하락하며 소비가 촉진되었다. 직접적인 환경세가 부과되면서 기업들은 저탄소 기술 전환에 박차를 가했다. 환경세로 인해 휘발유차나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가전제품의 가격이 상승하면서 전기차나 재생에너지 기반 제품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수소차나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국적으로 수소인프라나 전기차 충전소 등이 빠르게 확산된 것도 이 시기이다.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인 석유화학, 일반자동차, 중공업 기업들의 상품가격이 폭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시행된 대체연료법과 탄소회계법으로 수입품 가격도 그만큼 폭등했기 때문에 물가는 상승할지언정 내수 시장 점유율은 유지했다. 문제는 수출가격으로 이 시기 탄소배출이 많은 산업들은 국제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크게 상실했다. 파리 기후협약으로 경쟁력을 회복하기 전까지 이들 산업은 고통의 시간을 겪어야 했다.
또 환경세는 에너지 사용이나 탄소 배출에 집중적으로 부과되는데, 이 때문에 오래된 주택에 거주하면서 고효율 에너지 제품에 접근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이 에너지 비용 증가로 큰 경제적 압박을 받게 되었다. 이는 2004년 중원선에서 열풍당이 야당으로 밀려나는 결과를 불러온 직접적인 요인 중 하나였다. 이에 로이 머스탱 총리는 2005년 저소득층에 대한 환경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으며, 오래된 주택에서도 고효율 에너지 제품을 사용하기 쉽게하거나, 에너지 사용을 저감하는 장치의 보급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하부조직
간부
- 환경 대신
- 환경 부대신
- 환경 대신 정무관
- 환경 사무차관
- 환경 대신 보좌관
- 환경 심의관
- 환경 대신 비서관
내부부국(内部部局)
- 대신관방
- 기획조정국
- 기후대책국
- 방재대책국
- 수질환경국
- 대기환경국
- 자연환경국
- 원자력감독국
외국(外局)
역대 대신
대수 | 환경대신 | 내각 | 임기 | 출신/소속 정당 |
환경성 출범 (1997년 1월 3일) | ||||
1대 | 히이로 유이 (ヒイロ・ユイ) |
나구모 내각 | 1997.01.03. ~ 1998.07.30. | 열풍당 |
2대 | 타카기 와타루 (高木 渉) |
1998.07.30. ~ 1999.08.09. | 열풍당 | |
3대 | 제1차 미야노 내각 | 1999.08.09. ~ 1999.10.05. | ||
4대 | 나카모리 긴조 (中森 銀三) |
1999.10.05. ~ 2000.07.04. | 열풍당 | |
5대 | 토야마 카즈하 (遠山 和葉) |
2000.07.04. ~ 2000.12.10. | 열풍당 | |
6대 | 제2차 미야노 내각 | 2000.12.10. ~ 2002.05.02. | ||
7대 | 야마자키 류지 (山崎 竜二) |
이이즈카 내각 | 2002.05.02. ~ 2003.11.19. | 열풍당 |
8대 | 신죠 나오키 (新条 直輝) |
2003.11.19. ~ 2004.12.10. | 열풍당 | |
9대 | 코이즈미 이츠키 (古泉 一樹) |
머스탱 내각 | 2004.12.10. ~ 2005.10.31. | 학생자유당 |
10대 | 이시다 우류 (石田 雨竜) |
2005.10.31. ~ 2007.05.02. | 신세기연합 | |
11대 | 츠치미카도 모토하루 (土御門 元春) |
우즈마키 나루토 내각 | 2007.05.02. ~ 2009.04.01. | 과학당 |
12대 | 제1차 에이스 내각 | 2009.04.01. ~ 2009.06.01. | ||
13대 | 오오코우치 아키라 (大河内 明) |
제2차 에이스 내각 | 2009.06.01. ~ 2010.09.17. | 소년동맹 |
14대 | 유미야 이루카 (弓箭 入鹿) |
2010.09.17. ~ 2011.03.30. | 과학당 | |
15대 | 타이나카 리츠 (田井 中律) |
제1차 미사카 내각 | 2011.03.30. ~ 2014.02.10. | 학생자유당 |
16대 | 치탄다 에루 (千反田 える) |
제2차 미사카 내각 | 2014.02.10. ~ 2014.09.03. | 학생자유당 |
17대 | 고코우 루리 (千反田 える) |
2014.09.03. ~ 2015.05.26. | 과학당 | |
18대 | 마가츠가미 내각 | 2015.05.26. ~ 2015.10.07. | ||
19대 | 츠유리 쿠민 (五月 七日) |
2015.10.07. ~ 2016.10.08. | 학생자유당 | |
20대 | 우라라카 오챠코 (奈良 テマリ) |
카토 메구미 내각 | 2016.10.08. ~ 2017.10.01. | 소년동맹 |
21대 | 카토 메구미[4](加藤 恵) | 2017.10.01. ~ 2017.10.13. | 과학당 | |
22대 | 이치노세 이치고 (一関 壱伍) |
아카바네 내각 | 2017.10.13. ~ 2019.05.01. | 신일본판 |
23대 | 제1차 바쿠고 내각 | 2019.05.01. ~ 2019.09.30. | ||
24대 | 우즈이 텐겐 (宇髄 天元) |
아가츠마 내각 | 2019.09.30. ~ 2021.09.30. | 소년동맹 |
25대 | 하시비라 이노스케 (嘴平 伊之助) |
우즈마키 보루토 내각 | 2021.09.30. ~ 2023.05.16. | 소년동맹 |
26대 | 카치 시로쿠사 (可知 白草) |
제2차 바쿠고 내각 | 2023.05.16. ~ 현재 | 과학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