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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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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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공식 명칭 중국어. 与犯罪的战争(yǔ fàn zuì de zhàn zhēng)
일본어. 犯罪(はんざい)との戦争(せんそう)
한국어. 범죄와의 전쟁
영어. War on crime
정보
날짜
결과
피해 규모
총합 약 50,000명 이상

개요

배경

2020년대 중반, 중국 남부 연안에서 형성된 다국적 마약 유통망은 기존의 국경 단위 밀수에서 벗어나 하이난·광저우·상하이를 연결하는 삼각 항로를 중심으로 중국, 한국, 일본 내 토착 범죄 조직들과 연계되며 3개국 사회에 구조적 피해를 야기하였다. 이 유통망은 화학약품 밀조, 세관 통제 회피, 운송 시스템 내부화 등의 전 과정을 분업화하였으며, 주요 출발지는 홍콩·선전 일대, 중계지는 인천과 사이슈, 후잔, 종착지는 블라디보스토크와 나호드카로 구성되었다.

중국·한국·일본 정부는 유통망이 각국 경제의 저변까지 침투한 상황에서 결단적 조치를 회피하였고, 경찰력 중심의 제한된 대응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2028년, 블라디보스토크 항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러시아 내 레드 마피아가 삼합회와의 충돌 끝에 정박 중이던 마약 일부를 현지 민간인에게 유출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러시아 정부의 대응이 촉발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마약 유통이 본격화된 20세기 후반 이래 자국민 대상 공급이 없는 한 개입을 자제하는 입장을 유지해왔으나, 블라디보스토크 유출 사건 이후 정책 기조를 전환하였다. 정부는 프리모르스키 지방의 항만 노선이 고정 수송 경로로 기능하고 있음에 주목하였고, 관세청·국가보안위원회 합동 조사를 통해 항만 보안업체 및 국경경비대 지휘관 일부가 연루된 정황을 확인하였다. 해당 조직은 외국계 자금과 무기 밀매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준군사적 범죄체로 분석되었다.

이러한 분석 결과에 따라, 러시아 공화국 연방 상무정치위원회는 사법 기구에 대한 문책과 인사 경질을 단행하였고, 단순한 사법 대응 방식의 한계를 공식화하였다. 2029년 3월, 알렉산드르 구바로파신 대통령은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한 극동 연해 지역 주요 행정구에 광역 계엄령을 선포하였으며, 제5 전략예비기계화군단과 내무군 직할 작전부대를 현지에 전개하였다.

작전 발령과 함께 항만·공항·통신시설의 통제권은 군에 이관되었으며, 민간인 이동은 허가제 체계로 전환되었다. 보안군은 주간에는 전술 차량으로 외곽을 순찰하고, 야간에는 드론 및 고정익기를 활용해 해안 지역을 감시하였다. 체포자에 대한 공개 재판 절차는 생략되었으며, 불응 세력에 대한 사살 사례는 언론 접근 제한 하에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는 보고가 존재한다. 국내 언론은 본 작전을 '국가 차원의 방역 작전'으로 규정하였으며, 정부는 종료 시점을 특정하지 않았다.

이 사태는 환태평양 이사회 안보 기조에 중대한 변화를 야기하였다. 중화협정연합, 대한국, 대일본제국 등 마약으로인한 직접적 피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왔던 회원국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본 사태를 단순 범죄가 아닌 "국경 너머에서 작동하는 체계적 침투와 국가 안보의 근간을 위협하는 반국가적 범죄 행위"로 규정하였고, 2차 및 3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된 냉각 관계 이후 중·한·일 3국 정상 간의 첫 삼자 대면 정상 회담이 도쿄에서 역사적으로 개최되었다. 이후 정상들은 조사와 수사, 국경 너머의 법집행 공조 체계 형성을 선언하고, 해상 합동 정찰 훈련 확대, 외국인 범죄인 송환, 항만 통제 정보 공유, 작전 지역 내 법 집행 권한 상호 인정 등의 폭넓은 협력을 체결하였다.

참고

비고(Obsidian)

외부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