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공산당

갈라드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9월 23일 (수) 14:34 판

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대한국 국회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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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준 내각
제45대 국민원 2023.08.02 ~ 2027.08.01 이전
연립여당

113석240석

8석34석

16석30석

1석9석
야당

123석 193석

2석 25석

5석 24석

1석 21석

0석 15석

0석 12석

0석 12석

1석 2석

0석 1석
무소속 0석 6석
해외영토 의원 16석 · 16석
재적 270석 · 624석
좌측은 중추원 의석 수, 우측은 국민원 의석 수
대한공산당
大韓共産黨
당기
기호형 상징
문자형 상징
약칭
공산 (KCP)
영문명
Korean Communist Party
창당
1909년 10월 12일
중앙위원장
유호준 / 4선 (39,40,41,43대)
원내총무
채정윤 / 5선 (39,40,41,42,43대)
서기국장
다나카 슌이치 / 3선 (40,42,43대)
정치국장
린바오밍 / 3선 (41,42,43대)
중앙당사
황도특별시 남동구 자유로 167
표어
세계의 무산계급이여, 단결하라!
산하 조직
대한청년전위대(청년조직)
대한노동자총연합회(노동자조직)
기관지
노동신문
월간노동
스펙트럼
극좌 ~ 중도 좌파 (좌파 빅텐트)
이념
신공산주의
신마르크스주의
아시아공산주의
중농주의
내부분파
-마르크스레닌주의
-아나키즘
-생디칼리슴
중추원 의원
105 / 270 (39%)
국민원 의원
112 / 462 (24%)
성장/부지사
1 / 16 (6%)
당색
적색 (#CC0102)
산하연구원
노동정책연구원
당원수
9,472,239명
국제조직
아시아공산당
공산당-노동자당 국제회의
선거연합
시민연합
사민공산연대

개요

1909년 창당된 한국의 공산주의 정당. 합법화 이전 지하활동기까지 포함하면 현재 존속하는 한국의 정당중 가장 오래된 정당이다.

12.10 운동과 합법적 활동 시작후 지역민주주의 발전, 토지개혁등 여러 정치개혁과 노동운동, 농민운동등 한국 사회는 물론 동아시아 전체 역사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역사

창당과 해산, 지하활동기 그리고 12.10 운동

1909년 10월 12일, 여운형을 비롯한 전국 대학이나 공장에서 활동하던 공산주의 사회주의 그룹이 연합하여 만들어졌다. 이 때 공산당은 반왕정-반제국주의를 내세워 무력투쟁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실현하여 공화정을 세우려는 목적으로 각지에서 총파업, 무장봉기를 모의하였으나 1910년 5월 7일, 여운형을 비롯한 각 노동자협회 지도자들이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았고 공산당은 한차례 강제 해산된다.

그러나 중국이나 러시아로 도피하는데 성공한 일부 인사들은 각지에서 대한공산당을 재조직했고 연락부를 통해 재결합, 한국 본토에도 지하 연락부를 두어 지하활동을 계속해나갔다. 또한 중국에서 활동하던 대한공산당은 마르크스의 <자본>과 <공산당 선언>등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배포했고 리다자오, 천두슈등 젊은 중국 지식인들과 연대하였다. 이는 1917년 중국 공산당이 창당되는 배경이된다.

이후 김세원등 중국에서 활동하던 대한공산당내 지식인들은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제국주의들끼리 전쟁이 터지자 전세계가 공산주의를 통해 무산계급의 국가를 만들면 평화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서 칸트주의의 영향을 받아 <공산주의 영구평화론>과 <한국과 지나, 일본의 삼국 공산주의 평화체제>등을 집필하여 한국과 중국, 일본이 공산혁명을 통해 무산계급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시대를 종말시키면 세계 평화의 첫발을 내딛을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박원술등 다른 지식인들은 중국의 상황에 맞추어 농민 중심의 혁명을 구상하였고 각 국가마다 혁명의 주체와 그 방식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대한공산당과 중국 사회주의 지식인들은 이에 대한 열렬한 지지선언을 보냈으며 때맞추어 만주에서 여운형이 공산주의 세력을 규합하자 1918년 2월 베이징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의 사회주의자들이 한데 모여 <동아시아공산당연합>을 결성, 동아시아의 공산화를 위한 무력투쟁을 결의했고 1918년 12월 10일 한국 대련에서 항구 노동자들을 시작으로 장장 8개월에 걸친 공산주의 운동이 일어난다. 이것이 12.10 운동으로 한국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최근

2020년 중추원 선거에서 원내 2당이라는 고무적인 성적표를 받아든 대한공산당은 얼마뒤 사민당 탈당파 의원 32명을 심사후 입당을 허용하며 국민원에서도 제1야당으로 올라섰다.
대한공산당 창당 이후 유례없는 부흥기라 당원들도 기대감이 높아진 상황이며 대한공산당은 2023년 차기 선거에서 집권하기 위한 계획을 20년 연내로 세워 발표할 예정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비연정, 독자노선을 버리고 좌익 세력의 단결을 추구하고 노동자 계급에 대한 과감한 정책 홍보등이 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공화인민당, 시민당, 진보당은 이에 공식적으로 호응하였으나 사민당측에서는 공식적인 응답이 없다. 당 내부정리조차 되지 않은 탓으로 보인다.

2020년 9월 7일 공산당, 공화인민당, 시민당, 진보당 대표급 인사들이 모여 원내 단일 교섭단체를 구성하기로 협의하였으며 차후 논의를 통해 공식적인 선거연합, 정책연대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교섭단체 명칭은 ‘진보시민노동자연대’이다.

9월 10일, 유호준 위원장은 당내에 사민당 탈당파를 흡수한 것에 대한 불만이 있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공산주의 정책 강령이 타협적으로 수정되지 않을 것이며 특정 계층에만 집중하다 당의 전진이 가로막히지 않게 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9월 14일에는 진보시민노동자연대를 시민연합으로 개칭하는 동시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연합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성장급, 도지사급 후보는 당원 투표를 통해 각 정당에서 선출하고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하기로 하였으며 성의회 의원 또한 지역구에서는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하고 비례대표 또한 별도의 단일정당을 창당하여 후보를 내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범민족회의 탈당파로 구성된 대만원주민협회, 북방소수민족연대는 물론 중립 성향을 표방하던 한국노동자연대까지 시민연합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면서 점차 규모가 불어나는 중이다.

정책

  • 생산수단의 전면 국유화, 토지 공영화
  • 완전한 교육의 평등을 위한 교육혁신
  • 황실 재산 전면 정부 예산으로 재편

기타

  • 현재 한국 법률상 성명을 호적과 주민등록부에 기재할때 한자 이름은 반드시 한국어 독음으로 적어야 한다. 가령 한화계인 조흥림(趙興林)은 한어로는 ‘자오싱린’이라고 읽지만 호적에는 반드시 ‘조흥림’이라고 기재해야 한다. 또한 일본계인 전중양평(田中陽平)도 일본어로 ‘다나카 요헤이’지만 호적에는 ‘전중양평’이라고 기재된다. 하지만 대한공산당은 이것을 거부하고 한화계는 한어발음대로, 일본계는 일본어 발음대로 당적에 기재한다. 물론 일본계를 제외한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화계와 한민족은 이미 서로 동화되어 씨만 다른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해 대다수 한화계는 한국식 표기를 선호하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