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랑크 국민 공의회 원내 구성 | |||||||||||||||||||||||||||||||||
[ 펼치기 · 접기 ]
|
랑크 제국의 공산주의 정당 | ||||
---|---|---|---|---|
사회당 | → | 랑크공산당 | → | 현재 |
랑크인민전선 |
랑크공산당 | ||
---|---|---|
약칭 | RKP | |
표어 |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 |
창당 | 1997년 11월 5일 | |
선행 정당 | 사회당 랑크인민전선 | |
당대표 | 빌러스 / 상원 3선 (25~26, 28대) | |
상원 원내대표 | 코인쿱 / 상원 4선 | |
하원 원내대표 | 허레이프 / 하원 4선 | |
사무총장 | 템포레히 | |
이념 | 공산주의 사회민주주의 공화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유럽 공산주의 신좌파 페미니즘 평등주의 | |
스펙트럼 | 극좌 | |
상의회 | 27석 / 300석 (9.0%) | |
평의회 | 21석 / 500석 (4.2%) | |
광역자치단체 | 1석 / 35석 (2.85%) | |
기초자치단체 | 석 / 석 (0%) | |
식민자치주 지역단체 | 0석 / 10석 (0.00%) | |
당색 | 노동의 피 (#FF0000) | |
당가 | 국제 노동 인터내셔널가 | |
당원수 | 약 120,350명 | |
정책연구소 | 노동복지연구소 | |
청년 조직 | 청년공산당 | |
국제 조직 | 공산당-노동자당 국제회의 |
개요
랑크의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공산주의 극좌 정당이다.
역사
인민전선의 부활
랑크 내전 이후 인민전선은 무너지고 국민전선이 정권을 잡자 공산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 아나키스트 계열은 탄압받기 시작했다. 그러자 공산 계열은 지하 조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제3제국 이후 공산정당마저 합법 정당으로 자리잡자 지하에서 나와 사회당을 창당하여 꾸준히 활동하기 시작했다. 인민전선의 지도자들은 1세대 지도자들에게 정통성을 인정받고 2세대 지도자들이 활동하여 다시 한번 인민전선을 규합했다. 쉬베르테 4세 시절에는 집권당이 뭐만하면 좌클릭을 해대면서 친사회주의적 정책을 펼치자, 인민전선 역시 세를 불려나가기 시작했다. 사회당은 원내 2당까지 약진하였으며, 친서민적인 이미지는 사회당과 인민전선의 큰 장점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인민전선은 강경 공산주의 세력으로서, 툭하면 혁명을 부르고 거리의 과격 시위가 많아지고 사회 문제로 대두되면서, 인민전선의 인기는 식어가기 시작했다. 사회당은 온건 공산주의 노선을 채택하면서 인민전선과 선을 긋고 거리를 두려고 했고, 원내 공화당과 교섭단체를 이루면서 평화적인 정책을 추구했다. 이에 인민전선은 사회당의 배신이라면서 당시 사회당 당사를 점거하고 시위와 약탈을 이어갔다. 사회당과 인민전선의 갈등이 극에 달할 무렵, 사회당의 총선 결과가 당시 248석 중 단 2석만을 획득하며 사회당과 공산주의에 대한 인기가 어마어마하게 떨어졌음을 보여주었다. 그제야 사회당과 인민전선은 화해를 하고, 서로에게 협조적이고 순종적인 자세를 취했다. 다만 사회당은 1세대 인민전선에서 출발한 정당이고, 인민전선은 1세대와는 명백히 다른 2~3세대 지도층이 이끌었기 때문에 정통성 문제에서 사회당과 인민전선이 언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또한 사회당과 인민전선의 목소리는 다소 달랐기 때문에 인민전선의 주장이 사회주의 정책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결국 사회당에 킬런 대표가 당선되자, 사회당과 인민전선 통합발기인대회를 열어, 둘의 통합에 찬성하였으며, 이로서 1997년 랑크공산당이 탄생한 이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계파 갈등의 시작
랑크공산당으로서 호기롭게 첫 총선에 도전하였지만, 275석 중 단 1석(..)을 얻으며 참패를 당했고, 이에 따라 공산주의 단체의 대통합을 이룬 업적의 킬런이 사퇴하고, 다음 전당대회에서 많은 후보자가 나왔다. 이때, 크게 콜롬버를 지지하는 강성공산 계열과 푸로를 지지하는 온건사회주의 계열, 점퍼롱을 지지하는 신좌파-빅텐트 계열로 당내 세력이 나뉘었다. 이때 점퍼롱이 인지도나 경력 측면에서 다소 밀렸지만, 막판 대역전승으로 점퍼롱이 새 당대표로 선출되면서 랑크공산당은 일부 우익세력까지 받아들이는(!) 빅텐트와 신좌파적인 정당으로 변모했다.
이에 크게 반발한 원로 강성공산 계열 의원들이 다수 탈당했지만(그리고 일부는 사회당(랑크사회당)을 창당했다), 점퍼롱에 협조하며 당내 사회파로서 자리잡은 온건사회주의 계열은 21세기 공산주의의 한계를 인정하며 점퍼롱 당권을 밀어주었다. 사실상 이때부터 공산당의 강경 공산주의 색채가 옅어지기 시작했으며, 한때 스펙트럼이 좌익-중도로까지 움직인 적이 있었다! 물론 기존 강성 지지층들의 심한 비판을 받고 하원 선거에서 표까지 떨어지자, 신좌파 계열 소신파 대신 사회파가 당권을 잡고 다시 좌클릭을 해대기는 했다. 수권 정당인 민주당이나 진보정당등 대신 강경 좌익 정책을 펼치는 것이 목표였고, 이에 총선에서는 300석 중 12석이라는 21세기 들어 대승을 쟁취하기도 했다.
현재는 기존 탈당파들의 대사면으로 강경파, 사회파, 소신파와 신 청년파까지 많은 계파가 난립해있는 상황이고, 이중 가장 강력한 강경파와 사회파가 당권을 두고 격렬하게 싸운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회파에 유리하게 정국이 흘러가고 있다. 빌러스 대표는 사회파 중에서도 계파내 우익으로 평가받으며 29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제29대 랑크 상의회 선거
이번 선거에서는 사회민주당, 랑크사회당과 공산사회랑크회의 선거 연합을 꾸려 총선에 야심차게 출마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