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군의 난


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대한국의 쿠데타·반란·민란 (시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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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사건 주동세력
1906년 국민원 강제해산 사건 김홍집입헌당
1914년 * 함흥 봉기 대한공산당 및 일부 군인
1918년 * 12.10 운동 대한공산당
1947년 * 사군의 난 육군 제4군단 및 여러 군부대
1968년 * 몽골 위기 몽골인민해방전선
* 성공하지 못함
사군의 난
四軍之亂
기간
1947년 6월 19일 ~ 1948년 11월 25일
장소
조선반도 전역
원인
아시아 태평양 전쟁 종전후 정부의 군인 처우 미흡
현역 및 퇴역 군인들의 불만 증대
교전 세력
대한국 국군 정부군 대한국 국군 제4군단
삼도군사경찰대
지휘관
황제 세조 무황제
내각총리대신 여운형
조선임시치안본부장 조병옥
진압군 도원수 임세준
삼도임시치안대장 윤원구
제4함대장 목윤호 †
함흥부사 박만채
제주부사 이원율 †
제4군단장 조충은
삼도군사경찰대장 명진호 †
삼도치안대장 황은수 †
무진함장 구문옥 ←
부산부치안대장 홍대길
원산부군사경찰대장 안명수 †
병력
17만 5천명 10만여명
피해 규모
사상자 5천여명 사상자 2만명
민간인 피해
1~2만명 사망
결과
정부군 승리, 진압 성공
영향
제주 4.3 사건 발생
전후 복구 지연
퇴역군인 처우 개선

개요

정화 2년(1947) 제4군단 등 몇몇 육군 부대와 이에 호응한 군인들이 조선성에서 일으킨 군사반란, 내전.

원인

역사학자들은 사군의 난이 발발한 직접적 원인으로 전쟁으로 비대해진 군부, 해군과 육군의 차별대우로 인한 갈등, 재원 부족으로 인한 군인 임금 체불을 꼽고 있으며 간접적, 부가적 요인으로는 근대화가 진행되며 관서 지역과 만주의 신진 자본가 계급의 성장으로 인해 소외된 삼남지방(충청, 전라, 경상)의 전통 양반 계급이 가진 불만을 꼽고 있다.

전개

제4군단 반란

파죽지세의 반란군

안주 전투

패퇴하는 반란군

안주 전투에서 반란군의 주력인 제4군이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정부측에 항복하면서 반군은 사실상 와해되었다. 반란의 선봉에 섰던 조충은은 투항했고 제4군 지휘부와 병사 대다수도 죽거나 투항하면서 남은 것은 제4군의 일부 패잔병과 군사경찰대 소속 군인들 정도였다.

정부는 조충은 등 일부 반군 지휘부의 신병만 확보한 뒤, 투항한 일반 병사는 무장해제시켜 석방하는 관대한 조처를 내렸다. 그리고 빠르게 정부군을 재정비하여 남쪽으로 퇴각하는 반군을 추격했다.

삼남 토벌 작전

제주도로 간 반란군

제주 4.3 사건

14연대 반란

종결

영향

대전쟁의 피해도 미처 수습하지 못한 상황에서 터진 거대한 반란은 한국의 전후복구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