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방의 불란서 세계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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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육군 제4군단장 조충은 趙充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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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0년 2월 6일 | ||||||||||||||||||||||||||||||||||||||||||||||||||||||||||||||||||||||||||||||||||
충청도 부여군 | |||||||||||||||||||||||||||||||||||||||||||||||||||||||||||||||||||||||||||||||||||
사망 | 1976년 5월 12일 (향년 76세) | ||||||||||||||||||||||||||||||||||||||||||||||||||||||||||||||||||||||||||||||||||
조선성 전라도 군산군 | |||||||||||||||||||||||||||||||||||||||||||||||||||||||||||||||||||||||||||||||||||
묘소 | 부여군공영공원묘지 조충은육군정령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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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한국의 군인.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서 조선반도 수복에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군내 여러 문제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 실질적인 반군 수괴였으나 전쟁에서 공을 세운 점, 안주 전투에서 정부군과 싸우지 않고 투항한 점, 군내 파벌 정치에 맞서다 밀려난 점, 지속적으로 군내 부조리함을 고발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은 끝에 반란을 일으킨 점 등이 참작되어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2]
생애
일본군을 포위섬멸하다
사군의 난
군사재판
나는 항시 황제 폐하와 국가, 국민을 위해서 일해왔으며 그 이외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4군을 이끌고 어소[3]로 향한 것은 간악한 무리가 참언으로 나를 모함하고 충언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
군사재판에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한 발언 중 |
1949년 7월 2일, 육군군사재판부는 조충은에게 2계급 강등, 예우 박탈, 금고 5년형에 집행중지를 선고했다. 다른 4군 지휘부도 강등 및 예우 박탈, 징역 6개월에서 1년형이라는 가벼운 형을 선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