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구원전선 (서풍):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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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우크라이나에서 바람 혁명의 여파로 정파, 지역, 민족간의 갈등이 폭발하던 시기에 반데라주의로 바탕으로한 우크라이나 내셔널리즘 정당이다 국가구원군의 전신 인 우크라이나 비트리프당이 창당된다. 비트리프당은 바람 혁명 세력에 동참해 집회를 열어 폭력적 저항 운동을 펼쳤고 2014년 키이우 점령에도 참여하여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파면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같은해 치루어진 선거로 같은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던 우크라이나 인민당이 정권을 잡으며 활동이 잠잠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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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고 동부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들의 도네츠크 봉기가 발생하고 곧 돈바스 내전으로 번지자 비트리프당은 당 휘하의 자체적인 민병대를 조직, 최전선에서 우크라이나인들과 군장병들을 돕겠다 나섰고 민병대 초반의 인도주의적 활동은 점차 공격적, 급진적으로 변해갔다. 이 시기부터 비트리프당은 우크라이나 내셔널리즘 색체가 빠지고 네오 나치, 파시즘을 추종하는 정파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big>'''개요'''</big>==
 
우크라이나의 준군사조직이자, '''테러 단체'''이며 [[2019년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침공 (서풍)|{{color|#C4D2E1|'''2019년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정부에 실망한 '''프라비 섹토르''', '''이조우 연대'''의 극단주의파들이 떨어져 나와 만든 준군사조직이다. 이들의 상징은 2 SS기갑사단 다스 라이히의 부대마크를 살짝 번형 한 것으로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내부에 네오 나치가 상당히 많다. 우크라이나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의 자진 입대로 받고 있으며 아톰바펜 사단처럼 네오 나치들이 주로 입대한다.
2019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아조우 연대에 편입되어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함께 최전방에 투입되며 교전을 치뤘고 키이우 공방전에서 러시아군을 막아내는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미드고르드 정전 협정을 통해 전쟁에서 물러났고 동부 영토를 상당수 러시아계 반군들에게 빼앗기며 혼란시를 맞이한다. 비트리프당의 민병대는 아조우 연대에서 나와 옛 독일의 나치 사상을 계승하며 급진적이고도, 국수주의적인 우크라이나의 확장주의를 주창했다. 이를 통해 국가구원전선이라는 새로운 정당이 탄생하게 된다.  


==<big>'''역사'''</big>==
전쟁 직후 인민당 정부가 리비우로 이전 한 뒤 국민저항전선이 활동을 시작하며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은 혼란에 빠진다. 이 시기를 틈타 동부 영토에서는 친러 반군들이 드니프로 강을 넘어왔고 <span class="plainlinks">[https://uk.wikipedia.org/wiki/%D0%A1%D1%82%D0%B5%D0%BC%D0%BF%D1%96%D1%86%D1%8C%D0%BA%D0%B8%D0%B9_%D0%90%D0%BD%D0%B4%D1%80%D1%96%D0%B9_%D0%9B%D1%8E%D0%B1%D0%BE%D0%BC%D0%B8%D1%80%D0%BE%D0%B2%D0%B8%D1%87 {{글씨 색|#C4D2E1|'''안드레이 스템피츠키'''}}]</span>를 지휘관으로 한 국가구원전선은 러시아의 네오 나치 민병대인 러시아 의용군단을 흡수해 다수의 실전 경험을 쌓은 전문적인 군대를 조직해 공세를 막게 된다. 이 시기, 우크라이나의 국경 도시인 체르카시를 점령하고 군벌로 군림하게 되었으며 자신들을 '우크라이나 해방 자유국'이라 자칭하며 2차 바람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혁명의 여파로 체르카시에서만 2천명의 이상의 성소수자, 자유 러시아군, 혁명 반대파, 군부 세력들이 학살 당했으며 국가구원전선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에서 공공의 적으로 취급 받게 된다.


==<big>'''파벌'''</big>==
그러나 국가구원전선은 너무나 과도한 통치 방식과 우크라이나를 넘어서 폴란드와 서유럽에서 까지 활동하고 있었기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합동 작전, 체르카시 내부에서의 반란으로 완전히 해체 되었으며 남은 잔존 세력들은 게릴라로 전락했다. 시간이 흘러, 동유럽 전체를 전장으로  [[서풍 작전 (서풍)|{{color|#C4D2E1|'''두 번째 전쟁'''}}]]이 발발하자 혼란한 상황을 이용해 잠시동안 세력을 늘려 동우크라이나까지 영토 확장을 시도했으나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실패하게 된다. 하지만 극단적 파시즘은 동유럽 전체에 퍼져 완전히 제거되지 못하게 되었다.<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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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비 섹토르'''는 2013년에 창당 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내셔널리즘 정당으로 [https://en.wikipedia.org/wiki/Dmytro_Yarosh {{color|#C4D2E1|'''드미트로 야로쉬'''}}]가 이끌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국가구원군의 전신인 '''우크라이나 의용군단'''을 창설했으며 국가구원군 내에서 비교적 큰 세력으로 남아있다. 반데라주의, 극우 내셔널리즘 성향을 띄고 있다.
*{{글씨 크기|17|'''우크라이나 해방 자유국'''}}<br>


'''만족여단'''은 구 아조우 여단의 극단주의파가 떨어져 나와 창설 한 준군사조직으로 우크라이나 의용군단과 함께 국가구원군을 창설했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성향을 띄고 있다.


'''해외 의용군'''은 전 세계의 네오나치 지지자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우크라이나의 편으로 참전하며 만들어졌으며 국가구원군에 합류한 이후 파벌을 형성한 다국적 준군사조직이다. 주로 러시아인들로 구성된 '''러시아 의용군단''' 출신이 대다수이다. 이들의 성향은 정통 나치즘을 찬양하기에 위의 두 파벌보다 더욱 극단주의적이다.
[[파일:서풍 해자국.png|center|x290px|link=]]<br>
{{center|{{글씨 크기|17|'''우크라이나 해방 자유국'''}}'''<br>
Українська Вільна Держава Визволення'''}}'''<br>

2024년 12월 10일 (화) 16:18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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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구원전선
національна армія допомоги

우크라이나의 네오 나치 무장 단체.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발트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쟁 직후 모습을 들어냈으며 자신들을 국가사회주의 이상을 실현한 우크라이나 해방 자유국이라 자칭하며 활동하고 있다.



  • 역사

2013년, 우크라이나에서 바람 혁명의 여파로 정파, 지역, 민족간의 갈등이 폭발하던 시기에 반데라주의로 바탕으로한 우크라이나 내셔널리즘 정당이다 국가구원군의 전신 인 우크라이나 비트리프당이 창당된다. 비트리프당은 바람 혁명 세력에 동참해 집회를 열어 폭력적 저항 운동을 펼쳤고 2014년 키이우 점령에도 참여하여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파면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같은해 치루어진 선거로 같은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던 우크라이나 인민당이 정권을 잡으며 활동이 잠잠해 졌다.

그러나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고 동부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들의 도네츠크 봉기가 발생하고 곧 돈바스 내전으로 번지자 비트리프당은 당 휘하의 자체적인 민병대를 조직, 최전선에서 우크라이나인들과 군장병들을 돕겠다 나섰고 민병대 초반의 인도주의적 활동은 점차 공격적, 급진적으로 변해갔다. 이 시기부터 비트리프당은 우크라이나 내셔널리즘 색체가 빠지고 네오 나치, 파시즘을 추종하는 정파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19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아조우 연대에 편입되어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함께 최전방에 투입되며 교전을 치뤘고 키이우 공방전에서 러시아군을 막아내는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미드고르드 정전 협정을 통해 전쟁에서 물러났고 동부 영토를 상당수 러시아계 반군들에게 빼앗기며 혼란시를 맞이한다. 비트리프당의 민병대는 아조우 연대에서 나와 옛 독일의 나치 사상을 계승하며 급진적이고도, 국수주의적인 우크라이나의 확장주의를 주창했다. 이를 통해 국가구원전선이라는 새로운 정당이 탄생하게 된다.

전쟁 직후 인민당 정부가 리비우로 이전 한 뒤 국민저항전선이 활동을 시작하며 키이우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은 혼란에 빠진다. 이 시기를 틈타 동부 영토에서는 친러 반군들이 드니프로 강을 넘어왔고 안드레이 스템피츠키를 지휘관으로 한 국가구원전선은 러시아의 네오 나치 민병대인 러시아 의용군단을 흡수해 다수의 실전 경험을 쌓은 전문적인 군대를 조직해 공세를 막게 된다. 이 시기, 우크라이나의 국경 도시인 체르카시를 점령하고 군벌로 군림하게 되었으며 자신들을 '우크라이나 해방 자유국'이라 자칭하며 2차 바람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혁명의 여파로 체르카시에서만 2천명의 이상의 성소수자, 자유 러시아군, 혁명 반대파, 군부 세력들이 학살 당했으며 국가구원전선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에서 공공의 적으로 취급 받게 된다.

그러나 국가구원전선은 너무나 과도한 통치 방식과 우크라이나를 넘어서 폴란드와 서유럽에서 까지 활동하고 있었기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합동 작전, 체르카시 내부에서의 반란으로 완전히 해체 되었으며 남은 잔존 세력들은 게릴라로 전락했다. 시간이 흘러, 동유럽 전체를 전장으로 두 번째 전쟁이 발발하자 혼란한 상황을 이용해 잠시동안 세력을 늘려 동우크라이나까지 영토 확장을 시도했으나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실패하게 된다. 하지만 극단적 파시즘은 동유럽 전체에 퍼져 완전히 제거되지 못하게 되었다.


  • 우크라이나 해방 자유국



우크라이나 해방 자유국
Українська Вільна Держава Визволенн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