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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정부와 의회 간의 충돌이 장기화되던 가운데, 2027년에는 연합당 내 극좌파 성향을 대표하던 빌 디블라지오 의원이 극우 민병대 출신 참전군인 존 맥팔랜드에게 저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해당 사건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퍼지며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좌우 진영 간의 충돌이 폭력적으로 격화되었고, 수많은 시위가 약탈과 방화로 번지면서 다수의 경찰서와 행정 기관이 마비되었으며, 일부 주에서는 주 방위군까지 투입되었지만 혼란은 수습되지 못한 채 더욱 확산되었다. | 이처럼 정부와 의회 간의 충돌이 장기화되던 가운데, 2027년에는 연합당 내 극좌파 성향을 대표하던 빌 디블라지오 의원이 극우 민병대 출신 참전군인 존 맥팔랜드에게 저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해당 사건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퍼지며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좌우 진영 간의 충돌이 폭력적으로 격화되었고, 수많은 시위가 약탈과 방화로 번지면서 다수의 경찰서와 행정 기관이 마비되었으며, 일부 주에서는 주 방위군까지 투입되었지만 혼란은 수습되지 못한 채 더욱 확산되었다. | ||
많은 주에서 공권력이 무너지고 혼란이 장기화되자 대중은 점차 민주주의 체제 그 자체에 회의감을 품기 시작했고, 무기력한 의회와 정파 간 갈등에 염증을 느낀 이들은 오히려 강력한 행정부가 필요하다는 여론으로 돌아서게 되었으며, 과거부터 일관되게 강력한 질서 회복과 행정 집중을 주장해온 마이크 폼페이오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게 된다 | 많은 주에서 공권력이 무너지고 혼란이 장기화되자 대중은 점차 민주주의 체제 그 자체에 회의감을 품기 시작했고, 무기력한 의회와 정파 간 갈등에 염증을 느낀 이들은 오히려 강력한 행정부가 필요하다는 여론으로 돌아서게 되었으며, 과거부터 일관되게 강력한 질서 회복과 행정 집중을 주장해온 마이크 폼페이오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게 된다. | ||
한편, 폼페이오는 이미 상원의원 재직 시절부터 미국 내 보수 정치 세력뿐만 아니라, 전직 장성들과 특수부대 출신 인물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고 견고한 인맥을 구축해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가안보 및 국방 관련 의제에서 강경한 입장을 지속적으로 견지해왔다. 이러한 인적 기반은 그가 대통령직에 오르기 이전부터 이미 향후 국정 운영에 있어 군・정보기관과의 긴밀한 공조를 전제한 권위주의적 국정 스타일을 가능하게 했다. 대통령 취임 직후, 폼페이오는 자신의 정치적 노선을 충실히 반영할 수 있는 인물들을 정보기관과 국방부의 요직에 우선적으로 배치하였다. 특히, 강경 보수주의 성향을 지닌 인물들을 고위직에 포진시키는 인선 전략을 펼쳤으며, 이는 그에게 보다 과감하고 결정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정치적・행정적 토대를 마련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 |||
결국, 2027년 4월 27일, 폼페이오 대통령은 미국 북부사령부를 통해 사전에 준비해두었던 비상대응계획, 이른바 'CONPLAN 3502'의 실행을 공식 명령하게 된다. 이 계획의 시행을 통해, 그는 연방재난관리청 관련 법령의 일시적 유예를 기반으로 민병대 소집법을 중단시켰으며, 주방위군 및 연방군에 대한 작전 통제권을 연방정부 중앙으로 일시적으로 집중시키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 |||
동시에, 폼페이오는 루비오 행정부 시절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의 외교・정보기관 인맥, 그리고 CIA 국장으로서의 인사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여, 연방 정보기관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전국적으로 발생한 무장 폭동과 사회 불안 사태의 배후에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 이란 간의 연결고리 등 외국 세력의 개입 정황이 있다는 보고서가 언론과 정계에 등장하면서, 폼페이오는 이를 근거로 FBI 국장을 해임하고, 자신의 대통령 직속 안보 고문 출신 인사를 후임 국장으로 임명하였다. | |||
새로 임명된 국장은 취임 직후, FBI 내부의 고위 간부 다수를 내통 혐의 및 정보 조작・외부 유출 혐의로 기소하겠다는 압박을 가함으로써, 조직 내 협조 세력을 효과적으로 정비하고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정보 라인을 확보하였다. 한편, 국가안보국은 백악관 산하 국가안전보장회의 직속 특별팀에 흡수되는 구조 개편을 단행하였으며, 이로 인해 NSA의 일부 감청 및 정보 수집 권한이 대통령실로 직접 이전되는 전례 없는 조치가 이루어졌다. | |||
이와 병행해, 의회의 움직임과 각 주 정부의 독자적 대응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연방정부는 내란 상황 시 각 주의 법령을 무력화할 수 있도록 설계된 특별입법인 '연방 질서보호법'을 긴급히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해당 법령은 대통령에게 일시적인 비상 입법 권한을 부여하며, 기존의 하원 입법 기능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고, 그 권한을 '비상시 예산조정 및 안전보장이사회'라는 대통령 직속 5인 회의체에 위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폼페이오는 법률 제정과 예산 배분 등 핵심 입법 권한을 행정부 주도로 일원화하는 데 성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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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7일 (토) 00:1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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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American Riots
집안은 분열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며 새로운 내일에 대한 희망을 저버렸습니다.
현재 이들은 스스로에게 무엇이 정답인지 물을 것 입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결단 입니다.
먼 훗날 후손들이 이 일을 기억할 때, 그들의 이름이 비겁함이 아닌 용기로 기억되길 바랄 뿐입니다.
- 배경
2027년, 제2차 중동대전의 여파로 제4차 오일 쇼크가 발생하면서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10달러를 돌파하고, 물가 상승률이 급등하며 사회 전반에 불안이 확산되었다. 경제 붕괴로 인해 대량 실업 사태가 발생하면서 정부가 추진하던 개혁도 차질을 빚었고, 이에 대한 각종 음모론이 퍼지며 정치적 분열은 극에 달했다. 이러한 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연합당의 극좌파 의원이었던 빌 디블라지오가 극우 성향의 참전군인 존 맥팔랜드에게 저격 당해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며 미국 전역에서 좌우 세력 간의 긴장을 폭발시키게 된다.
- 전개
2027년 5월 10일,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좌파 학생 시위대와 극우 민병대가 충돌했고, 이를 진압하던 경찰과의 격렬한 대치 과정에서 7명이 사망하고 150명이 부상을 입는 '컬럼비아 대학교'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며 전국적인 폭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폭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번지며, 사회 전반에 걸쳐 계층, 인종, 정치적 이념, 종교적 갈등에 따른 충돌로 확산되었다. 혼란을 틈타 약탈 행위가 급증하면서 수많은 상점과 대형 마트가 약탈 피해를 입었으며, 도시 곳곳에서 방화와 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일부 지역에서는 치안이 사실상 붕괴되었고, 정부는 주방위군을 투입해 질서 회복을 시도했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만으로는 불안을 해소하기 어려웠고, 이에 따라 일부 지역에서는 무장한 자경단이 등장하며 자체적으로 치안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 루트 A: 폼페이오


중도에서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마이크 폼페이오는, 취임 직후부터 정치·사회 전반의 대대적인 개혁과 동시에 군의 재무장을 추진할 것을 천명하며 강한 국가를 지향하는 노선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야당인 연방당은 친기업적이고 관료 중심의 기조를 유지하며 폼페이오 정부의 개혁 노선에 강하게 반발했고, 2026년 제2차 중동대전으로 인한 국제적 혼란과 경제 불안 속에 치러진 상원 선거에서 여당인 연합당이 대패하자, 이를 기회 삼아 의회의 주도권을 장악한 연방당은 그의 핵심 정책 대부분을 상임위 단계에서 무력화하거나 본회의에서 부결시키며 행정부의 입법 동력을 사실상 차단했다. 이처럼 정부와 의회 간의 충돌이 장기화되던 가운데, 2027년에는 연합당 내 극좌파 성향을 대표하던 빌 디블라지오 의원이 극우 민병대 출신 참전군인 존 맥팔랜드에게 저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해당 사건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퍼지며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좌우 진영 간의 충돌이 폭력적으로 격화되었고, 수많은 시위가 약탈과 방화로 번지면서 다수의 경찰서와 행정 기관이 마비되었으며, 일부 주에서는 주 방위군까지 투입되었지만 혼란은 수습되지 못한 채 더욱 확산되었다. 많은 주에서 공권력이 무너지고 혼란이 장기화되자 대중은 점차 민주주의 체제 그 자체에 회의감을 품기 시작했고, 무기력한 의회와 정파 간 갈등에 염증을 느낀 이들은 오히려 강력한 행정부가 필요하다는 여론으로 돌아서게 되었으며, 과거부터 일관되게 강력한 질서 회복과 행정 집중을 주장해온 마이크 폼페이오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게 된다. 한편, 폼페이오는 이미 상원의원 재직 시절부터 미국 내 보수 정치 세력뿐만 아니라, 전직 장성들과 특수부대 출신 인물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고 견고한 인맥을 구축해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가안보 및 국방 관련 의제에서 강경한 입장을 지속적으로 견지해왔다. 이러한 인적 기반은 그가 대통령직에 오르기 이전부터 이미 향후 국정 운영에 있어 군・정보기관과의 긴밀한 공조를 전제한 권위주의적 국정 스타일을 가능하게 했다. 대통령 취임 직후, 폼페이오는 자신의 정치적 노선을 충실히 반영할 수 있는 인물들을 정보기관과 국방부의 요직에 우선적으로 배치하였다. 특히, 강경 보수주의 성향을 지닌 인물들을 고위직에 포진시키는 인선 전략을 펼쳤으며, 이는 그에게 보다 과감하고 결정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정치적・행정적 토대를 마련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결국, 2027년 4월 27일, 폼페이오 대통령은 미국 북부사령부를 통해 사전에 준비해두었던 비상대응계획, 이른바 'CONPLAN 3502'의 실행을 공식 명령하게 된다. 이 계획의 시행을 통해, 그는 연방재난관리청 관련 법령의 일시적 유예를 기반으로 민병대 소집법을 중단시켰으며, 주방위군 및 연방군에 대한 작전 통제권을 연방정부 중앙으로 일시적으로 집중시키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동시에, 폼페이오는 루비오 행정부 시절 국무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의 외교・정보기관 인맥, 그리고 CIA 국장으로서의 인사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여, 연방 정보기관에 대한 장악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전국적으로 발생한 무장 폭동과 사회 불안 사태의 배후에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 이란 간의 연결고리 등 외국 세력의 개입 정황이 있다는 보고서가 언론과 정계에 등장하면서, 폼페이오는 이를 근거로 FBI 국장을 해임하고, 자신의 대통령 직속 안보 고문 출신 인사를 후임 국장으로 임명하였다. 새로 임명된 국장은 취임 직후, FBI 내부의 고위 간부 다수를 내통 혐의 및 정보 조작・외부 유출 혐의로 기소하겠다는 압박을 가함으로써, 조직 내 협조 세력을 효과적으로 정비하고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정보 라인을 확보하였다. 한편, 국가안보국은 백악관 산하 국가안전보장회의 직속 특별팀에 흡수되는 구조 개편을 단행하였으며, 이로 인해 NSA의 일부 감청 및 정보 수집 권한이 대통령실로 직접 이전되는 전례 없는 조치가 이루어졌다. 이와 병행해, 의회의 움직임과 각 주 정부의 독자적 대응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연방정부는 내란 상황 시 각 주의 법령을 무력화할 수 있도록 설계된 특별입법인 '연방 질서보호법'을 긴급히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해당 법령은 대통령에게 일시적인 비상 입법 권한을 부여하며, 기존의 하원 입법 기능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키고, 그 권한을 '비상시 예산조정 및 안전보장이사회'라는 대통령 직속 5인 회의체에 위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폼페이오는 법률 제정과 예산 배분 등 핵심 입법 권한을 행정부 주도로 일원화하는 데 성공 |
- 루트 B: 부티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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