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니아 (서풍)

Citainic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6월 2일 (월) 00:26 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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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니아 연방 공화국
Federative Republic of Azania
2026년 ~

2031년, 빈트후크

아프리카의 급진적인 변화 속에서 탄생한 흑인 민족주의 연합체.
남아프리카 경제자유투사당을 주도로, 남아프리카 일대에 거대한 블록을 형성하였다.



역사



2021년 폭동 당시, 미국계 PMC의 무력 진압으로 인종 간 갈등이 폭발하였다.

2010년대 중반부터, 민간군사기업들이 아프리카 대륙 곳곳의 내전과 자원 분쟁에 깊숙이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아프리카 전역은 외세에 대한 깊은 불신과 격렬한 적개심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콩고민주공화국, 말리, 수단 등 자원이 집중된 분쟁 지역에서는 정부군과 반군 모두가 PMC들의 군사 기술과 무기 수입에 의존하며 전쟁을 지속했고, PMC들은 전장을 장기화시킴으로써 자원 수탈의 시간과 범위를 극대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삶의 터전을 잃고 피난을 떠났으며, 구호 활동조차 무장화된 이해관계의 틀 안에서 왜곡되어 갔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한 반정부 시위나 지역 불안정을 넘어, 흑인 민족주의와 반외세 운동으로 격화되며, 새로운 정치적 저항의 형태를 형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 같은 흐름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특히 격렬한 정치적 지각변동을 불러왔다. 2008년 세계 대침체 이후 남아공 경제는 장기 침체의 늪에 빠졌고, 집권 여당인 아프리카 민족회의는 무능과 부패, 관료주의로 인해 민심의 이탈을 초래했다. 2021년 특수감염성폐렴병이 아프리카 대륙을 강타하면서 남아공은 초유의 봉쇄 조치를 시행했으나, 준비되지 않은 대응은 경제 기반을 붕괴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실업률은 폭등했고, 식량난과 에너지 부족이 가시화되면서 정부는 전기 인프라 운영권을 중국 국영기업에 양도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는 저소득 흑인층을 중심으로 격렬한 사회 불만과 반정부 시위를 촉발시켰고, 이러한 불안정 국면에 외국 기업의 요청으로 투입된 PMC들은 민중과의 유혈 충돌을 일으키며 남아공 사회에 외세에 대한 전방위적 증오를 확산시켰다.

결국 이러한 사회적 균열의 틈을 뚫고, 2024년 총선에서 급진 좌파 민족주의 정당인 경제자유투사당이 중도좌파 연합과의 연정에 성공하면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다. EFF는 토지 무상 몰수, 핵심 산업 국유화, 외국 자본 통제, PMC 퇴출이라는 급진 개혁 노선을 전면에 내세우며, 실업에 시달리던 흑인 청년층과 저소득 노동 계층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다. ANC는 붕괴 수순을 밟으며 주요 당직자와 행정 관료 대부분이 정치적으로 실각하거나 EFF에 흡수되었고, 남아공 정치는 단숨에 민족주의적 사회주의 이념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이와 같은 변화는 국경 너머로 확산되었다. 나미비아에서도 EFF의 자매 정당인 나미비아 경제자유투사당이 집권에 성공하고, 남아공의 노선을 적극 추종하며 정치적·경제적 연계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양국은 공동 시장과 상호 방위 조약의 체결을 논의하며 외세의 개입을 배제한 자립적 블록 형성을 모색했고, 마침내 2025년, 남아공과 나미비아 양국 정부는 범흑인 민족주의, 반제국주의, 사회주의를 핵심 이념으로 한 '아자니아 구상'을 공식 발표하게 된다. 이후 최종적으로 남아공과 나미비아가 정치·군사·경제 공동체를 완전 통합하여 아자니아 연방 공화국을 공식적으로 선포한다. 새롭게 재편된 헌법에선 다민족 민주주의, 평등주의 원칙을 표방하나, 식민 잔재 청산을 명분으로 백인과 아시아계에 대한 토지 재분배, 자산 국유화, 시민권 재심사 정책이 시행되며 수십만 명의 백인 농장주와 기업가, 중산층이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캐나다 등지로 탈출하는 엑소더스가 발생했다.

한편, 아프리카 남부 지역에서는 흑인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정치 노선을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 사이에서 정치적, 경제적 연대가 가속화되기 시작하였다. EFF와 유사한 정책 방향을 견지하며 좌파 정당이 장기 집권하고 있는 짐바브웨와 모잠비크는, 자국 내에서 발생한 지속적인 경제 위기와 기후 변화로 인한 심각한 가뭄 사태로 인해 2027년부터 2028년 사이에 국가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두 나라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경제 기반과 에너지 및 식량 자원을 보유한 아자니아와의 협력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였고, 이를 계기로 아자니아로부터의 실질적인 지원을 제공받는 조건으로, 정치적 주권은 유지하되 일정 부분 정책적 조율을 감수하는 형태로 아자니아 연방의 구성국으로 가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아자니아 연방은 명실상부하게 주변국들을 실질적 영향권 아래로 포섭하며 블록 형성을 본격화하였고, 그 결과 짐바브웨와 모잠비크를 포함한 남아프리카 지역에서 좌파 성향 정권들의 벨트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 속에서, 상대적으로 정치·사회적으로 안정된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오랜 기간 동안 중도적이고 실용적인 정책 기조를 고수해온 보츠와나는 아자니아 연방 가입 요청을 명확히 거절하며 자국의 독립성과 정치적 노선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로 인해 아자니아와 보츠와나 간에는 외교적 긴장이 고조되었고, 양국 관계는 점차 악화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던 중, 2029년, 아자니아와 보츠와나의 접경 지역에서 희귀 광물 자원 채굴권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하였고, 이 분쟁은 양측 군대가 직접적으로 대치하는 무력 충돌로 비화하게 되었다. 아자니아 측은 보츠와나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군사적 압박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였고, 이러한 강경한 압박 전략 속에서 보츠와나는 기존의 완전한 독립 노선을 고수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결국, 보츠와나는 국가의 통합을 보장받는 대신, 국방, 통화, 외교 정책에 관한 주권의 상당 부분을 아자니아 연방에 이양하는 조건부 형태의 가입안을 수용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아자니아는 자국 중심의 연방 체제 하에서 또 하나의 실질적인 영향권 국가를 확보하게 되었으며, 그 외교적·군사적 블록은 더욱 확장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자니아의 이러한 확장주의적 행보는 중국과 유럽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던 동아프리카 연방과의 충돌을 야기했으며 이는 곧, 아프리카의 두 거대 블록이 아프리카의 주도권을 두고 대규모 전쟁이 발생하는 전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