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에티아/역사

Kelim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5월 11일 (일) 19:32 판 (→‎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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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에티아의 국가 목록
Arietía o Merfedeth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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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본 문서에서는, 아리에티아 전역의 장대한 역사를 시간 순서에 따라 서술한다. 현재에 해당하는 헬리나르력 5450~5451년 정도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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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문서는 아리에티아 국가들의 흥망성쇠와 정치적 변동을 중심으로 다룹니다.
  • ...각 지방을 초점으로 한 역사는 각 지방 문서에, 생활상이나 경제상을 비롯한 내용은 별도 문서에 실리므로 참고하십시오.

상고대

상고대(上古代)는 대분화로 인해 아리에티아에 인간이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 고전 에르센드 문자 혹은 고전 메로시온 문자[1]가 쓰이기 이전까지, 즉 선사 시대를 의미하는 시대 구분이다.

원주민과 이주민

드람리아섬에서 넘어온 니에시 메르데시 드람리에리가 니에시 메르데시 하르나리를 밀어내고 동화시켰다. 이로서 아리에티아 인류의 역사는 본격적인 팽창기를 맞이한다.

일곱 지역

아리에티아가 자연 환경이 크게 차이나는 일곱 지역으로 분화된 모습을 보인다. 각 지역은 적당히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는 연속체라 보면 된다.

고전기

문자가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부터 제2왕국 시기까지를 고전기라고 부른다.

성읍국가의 탄생

농업이 점차 퍼져나가고 융성하며, 우리가 흔히 아는 형태의 사회 발전이 가속되었다. 이에 따라 각지에는 소형 성읍국가가 생겨나며, 동북부에서 융성하였던 가장 유명한 모델은 엣사르 양식이다.

팔레고니르 왕조의 등장

에레수리아만 일대는 원래부터 문명의 요람으로 불렸다. 비옥하고 따뜻했던 과거 시기, 이데르강이 형성해준 기름진 토양과 풍부한 물고기들이 모이는 기수역을 비롯해, 사람이 살기 좋은 적당히 완만한 구릉지와 평야가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동북부에는 오래전부터 많은 성읍 국가가 있었는데, 그 중 현재 수도시를 연고로 하는 어느 강력한 왕국이 탄생하였다. 이를 이끈 전설적인 군주 셀리스 대왕[2]은 (클라르킬리아적 관점에 따르면) 클레니에스에게 성무(聖務)를 부여받아 정통된 국가를 이룩하였으며, 이에 따라 단숨에 오르도리아주, 오르세이아주, 스테보니아주 동부까지 정복하여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그 왕국은 자신에게 "동쪽 초원의 왕국"이라는 뜻의, 클레도리아라는 이름을 붙였다[3][4].

처음으로 탄생한 클레도리아 왕국은 팔레고니르[5]라는 이름을 내건 가문이 통치하였다. 따라서, 이 때의 왕조를 팔레고니르 왕조[6] 혹은 클레도리아 제1왕국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이러나저러나 팔레고니르 왕조는 고전기 최고의 번영국으로, 전성기에는 에르센디아주 중부, 그레시아주 전역, 오르세이아주 극히 일부와 오르가이아주 북부 일부까지 뻗어나갔다.

유목민의 남하와 스테보니르 왕조

제1왕국의 전성기는 지나가고, 팔레고니르 혹한이라고 불리는 기후 변화가 찾아왔다. 온난기가 끝나고 날씨가 추워지자, 아리에티아 북동의 강력한 농업 생산량을 주 수입으로 삼아 왕국의 유지비로 이용하던 팔레고니르 왕조는 급격하게 쇠퇴하였다[7]. 이러한 기후변화 때문에 에드렐로 산맥 너머 건조한 스텝을 살아가던 북방 유목민들이 지나치게 추워진 날씨를 못 이기고 남하하였다. 이들은 우수한 기마 전술을 이용하여 정주 농업 국가였던 팔레고니르 왕조를 남녘으로 밀어내고, 스테보니아주, 에르센디아주를 너머 현 카피톨리아 광역권 일대까지 정복하였다. 왕실은 급히 에셀리아 광역권 근방으로 피란을 떠났고, 이렇게 대내외적인 혼란을 맞던 팔레고니르 조정은 유력한 군사 세력이었던 스테보니르 가문[8]의 쿠데타를 맞아 축출되었다.

이렇게 성립된 두 번째 왕조는 클레도리아 제2왕국[9] 혹은 스테보니르 남클레도리아 왕국, 제1차 남클레도리아 왕국이라고 불린다. 별칭은 전사 왕국. 제2왕국의 특징은, 별명답게 무장들이 국가를 점거했다는 점이다. 찬란한 문화는 다소 쇠퇴한 감이 있었으나, 군사력과 전략 구성력, 외교술은 이때를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해 북방의 강호들과 겨룰 기반을 착실히 쌓아갔다.

자신들의 옛 거점이자 수도가 털리는 꼴을 지켜만 봐야 했던 굴욕을 씻기 위해 셀리스 대왕의 권위를 이용하고, 공공의 적을 만드는 식으로 외교전을 진행하여 일 대 다수의 구도를 만드는 데 치중하였다.

중부 성읍국의 발흥

지금의 오르가이아주는 국내 최고 옥토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기후변화와 충실한 개간과 치수로 인해 달성된 인공적인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북부에서 내려온 에레수리아만 일대 주민들이 전파한 선진 문물이 방아쇠가 된 점도 한몫했다. 북부의 상대적으로 복잡한 사회 구조의 영향을 진하게 받은 팔레고니르 후반부터, 이미 오르가이아 일대 토착 국가의 모습이 관찰되기도 한다. 그런데, 한편, 가장 중요한 정치적 발단이 되었던 것은 아무래도 팔레고니르의 몰락이었다. 당시 팔레고니르는 부족한 행정력을 보충하기 위해[10] 정부에 우호적인 지방 토착민을 변방사로 삼아 자치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토착민이었던 이들은, 팔레고니르 왕조가 멸망하자 곧바로 독립하고 자신의 관할 촌락을 맡아 군림하는 성읍국으로 전환되게 된다. 이주민들에게 받은 선진 농업 기술을 바탕으로, 비옥한 평지를 개간한 농업국가가 많이 생겨나서 지방 구석구석까지 수많은 평원 성읍국가가 탄생하기에 이른다.

북서부의 연대와 폐쇄

북서부는 아직 선사 시대이다.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연대를 진행하지만, 이 시기에 다른 지역과의 교류 사실을 볼 수 없다.

남부 정주민의 동요

남부 정주민이 많아지고, 북쪽 유입민이 많아지면서 지역별로 세분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고전후기

대도의 왕국, 테레시르 왕조

북방에서 강대한 세를 떨치던 비후르인들이 점점 쇠락하자 스테보니르 왕조의 방계 후손인 테레시르 가문이 주도하여 반격, 수도시 일대를 탈환하고 유목 세력을 스테보니아주 일대로 밀어내다.

오르가이아 세력은 꾸준한 개혁을 통해 강해져서, 클레도리아 왕국도 정복하지 못하게 되다.

테레시르 왕조는 발전한 기술력과 넓어진 강역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테레시르 대도를 건설하다. 이는 아리에티아 동부의 핵심 교통망으로 자리잡다

남방이 통일되다, 하르가르피리아 왕국

플라다리아주, 마스카르주, 데셀리트주를 모두 정복한 거대한 하르가르피리아 왕국마즈나스시 일대의 세력에 의해 건국되다

남방왕국은 서역으로의 교역길을 관리함으로써 번성하다. 항해술이 발전하여 차츰 아리에티아 북부로도 전달되다. 교역이 융성하고, 인구가 느는 것에 기여하다. 멜란레브네와의 산발적 해전이 벌어지다.

나무의 전사, 스트론티아 공국의 성립

거대한 스트론티아주의 삼림을 영토로 하는 스트론티아 공국이 탄생하다. 엘라네이샤현 지역을 제외하고 영지로 삼다. 공(公)이라는 호칭은 클라르킬리아에 의한 세력 규모를 나타내는 용도이지, 봉건제와는 별 관련이 없음을 인지하자.

스트론티아 공국은 농업 생산량이 상대적으로 딸리는 편이었기에, 자신의 위치 및 특이 산물을 활용한 중립 외교를 펼쳤다.

항해왕조 코나베르가 팽창하다

테레시르 왕조의 직통이 끊기자 또 다른 방계 코나베르 가문이 왕위를 넘겨받는다.

북방 견제는 덜했던 평화의 시기라 흔히 인식되지만, 오르세이아주에서 남방왕국과 계속 전투를 벌였으므로 그렇다고 하기에도 뭣하다. 아무튼 그들의 우월한 항해술에 영감을 받아, 해안가 인구 밀집 지역을 통하는 메르데소르 연안 항로가 개발된다. 영토는 스테보니르(제2왕국)보다는 당연히 컸고, 팔레고니르(제1왕국)보다는 작았고 테레시르(제3왕국)보다는 살짝 더 줄어들었다. 이는 신틀로리아현 지역이 일부 독립했기 때문이다. 남부 국경 분쟁의 여파도 있다.

영토가 그렇게까지 넓지는 않았을지언정, 이들은 상업 및 교역을 통하여 부를 쌓았다. 교역을 위한 지리학이 발전하였으며, 레브네멜란과의 교역 흔적도 발견된다. 이미 루메르스 제국에 닿은 것으로 보이며, 소른티리아 근해의 난파선도 아주 가끔 발견된다.

고원의 장로, 마스카르 왕국의 서막

사실 하르가르피리아 왕국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복속된 중앙집권국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그 중앙집권세력의 카리스마가 부족하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구조였던 것이다. 위쪽의 역사적 클레도리아 왕국은 관료제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었건만, 이들은 차마 그러지는 못해 두 세기도 못 가서 금방 무너지고 만다.

왕국 영토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척박한 마스카르 고원이다. 이곳을 흡수한 것이 마스카르 왕국으로, 남방왕국의 포지션을 대부분 이어받았다고 생각하면 좋다.

루메르스플라다리아

한편 남방왕국에서 분리되어 떨어져 나간 남서부 플라다리아는 사실 교역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위치에 속했다. 온화한 저지대였기도 하고, 에르멜리시아와 많은 교류를 주고받았기에 나머지 아리에티아 지역에 비해서 이질적이다.

강성해진 루메르스 제국에게 플라다리아가 먹힌 역사가 있는데, 이때 마스카르와 박터지게 싸웠다[11].

백단의 공주, 헤르노스 공국의 성립

백단(白檀)은 자작나무를 의미하는 한자어다. 헤르노스 공국은 자작나무가 많이 자생하는 온화한 내륙 숲에 형성된 국가다. 이곳은 다섯 구릉을 바탕으로 한 연합체였는데, 위쪽 스트론티아보다는 덜 척박해서 오히려 작은 세력을 통합하는 데 오래 걸렸다.

이들도 중계 무역으로 먹고 살았다. 농업하기에는 더 괜찮은 환경이었기에 무난하게 자립해나갔다.

북서부의 개방, 이데리아 공국

이데리아의 1차 은둔이 끝나고, 이데리아와 외부의 교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곳은 기층 민족이 짙은 편으로, 현재도 유전적 차이가 일부 있다.

이 지역은 엄청난 광물 생산지에 해당한다. 또 강 상류이며, 고원이고, 산맥으로 둘러싸인 개활지이기도 하다. 온천지대이기도 하며, 광물 가공 기술과 축성 기술을 토대로 스토레니시시아 협곡이데리아의 문을 쌓기도 하였다.

중세

기마민의 귀환과 베르데트 왕조

강대해진 카니겐족(Kanighen)이 에드렐로 산맥 너머에서 갑작스레 에드리아를 통일하다. 압도적인 기마 전략을 통하여 남방과 서방을 침공하여, 본래 아리에티아 내에서는 스테보니아주 정도만을 차지하고 있던 기마계 국가들이 급격하게 남하하다.

코나베르 가문은 이내 축출당하고, 또 다른 방계 가문이었던 베르데트 가문이 클레도리아 왕국을 석권하여 왕조가 또 교체되고 만다. 이를 제5왕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왕국은 에르센디아주스테보니아주 전역을 뺏기고, 두 세기 동안 그레시아주오르세이아주를 거점으로 삼는 굴욕을 맛본다.

한편 이데리아 공국은 카니겐의 집적인 침공을 맞는다. 이데리아의 벽에는 당시의 교전 흔적이 남아있다. 북방의 기병과 수 차례 공성전을 치르며, 이데리아의 2차 은둔이라는 사건이 앞으로 한 세기 정도 발생한다.

역동의 평원, 오르가이아 제국(諸國)

다시 사람들이 남하하자, 오르가이아 제국(諸國)[12]은 또 다른 사회의 자극을 받는다.

현재의 현(縣)과 유사한 소국 연합체가 여럿 생겨난다. 현대 오르가이아주 지역 구분의 기초가 쌓였다고 보면 좋겠다.

결계의 숲, 스트론티아 삼림연방

고원의 장로, 마스카르 왕국이 번창하다

항구의 여왕 플라다리아 대공국의 성장

산 밑의 장인 이데리아 대공국의 대두

북방의 퇴장과 초원의 반격

클레니에스이시여!

근세

클레도리아 통일전쟁첫 제국

클레도리아의 통일, 마르카르 가문의 집권, 성장

뱃머리를 돌려라!

원양항해와 뱃상임, 무역로 이야기

이방이여 안녕

타 문화권과 새로운 대륙 이야기

협곡 전쟁

서남부 정치적 상황에서 비롯된 에르도리아 협곡 이야기

중앙집권의 꿈

좀처럼 지방세력을 제압하지 못하는 제1제국

소빙하기와 제8차 에드렐린 전쟁

계몽혁명 참조...

남해를 찾아서, 용치 전쟁

제국의 황혼

꺼져가는 강대국의 결속력.

축복의 그대여, 악몽에서 깨어나라

대문 선언

근대

계몽혁명둘째 제국

총리의정의정회의

귀족에서 자본가로, 농부에서 공장으로

그을린 호수와 설익은 쌀밥

동쪽의 바다는 무한하다네!

상냥한 하르나르 보호해주기

본격 고향 점령하기

리브데보리아와 검은 물의 기적

조용하고 강렬하게, 동서정보전

아리에티아인 만세!

하나의 유령이 산맥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베루디야의 공산화

썩고 썩어 문드러지고 있던 사회 구조와, 동방의 소른티리아에게 해전에서 발리면서 동해로 나가는 패권을 상실했다는 사실에 절망한 민중은 혁명을 일으켰다...

티르시리안 전쟁과 백년평화의 황혼

티르시리안, 에르멜리시아 지역의 동남쪽에 위치한 여러 열국이 많은 지역이다. 이곳은 남해에 진출하려는 여러 제국주의 강국들이 노리던 지역으로, 민족 간 복잡한 갈등과 독립운동, 열강들의 세력 진출이 합쳐져 점점 크게 비화되고 있었다.

약 3년 반 정도 산발적으로 싸워대다가 급작스레 조용해졌는데, 그때까지는 아무도 이것이 프롤로그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제1차 동서대전

(클레도리아 제2제국은 자신의 국토를 그렇게까지 희생시키며 싸운 나라는 아니었음) (이 단락에서는 1차대전이 아리에티아에 미친 영향을 중점으로 서술)

호황과 통탄

제1차 동서대전의 화마가 휩쓸고 간 플라다리아주 일대는 심각한 전쟁 피해를 입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타지는 군수물자 생산을 통한 이득을 보아 생겨난 모순적인 경제호황.

황조의 대공황과 때이른 죽음

원인 모를 초대규모 경제위기가 찾아옴.

경제위기 뿐만이 아니라, 그레니르 황후가 출산 후유증으로 27세의 나이에 붕어. 딸 하나만을 남겨둔 상태에서, 키르메넬 황제가 48세의 나이로 붕어.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21세의 어린 여제 세르네세만을 남겨놓고, 황실에 때이른 죽음 둘이 다가옴.

이러한 난세에 나타난 영웅 아닌 영웅이....

서민의 천사, 니델레이센 일리아미키르

천사의 폭주

긴장의 5년

제2차 동서대전

(2차대전 때는 클레도리아가 매우 적극적으로 싸웠다. 클레도리아의 행적에 중심을 맞추어 시간에 맞게 서술)

멜란의 도발

클레도리아령 테네카클레도리아령 드람리아를 멜란에게 빼앗기고 만다.

천사의 타락

타천사는 인도를 거부한다

쇠까마귀의 충격

총력전이다, 메르데소르 전쟁

진격한다, 니스보니쟈 돌파

리브데크 폭발 사건

석유길을 찾아, 알리아네샤 전선

폐하오르가이아

밀림을 넘고 넘어

반격한다, 로린 상륙

멜란 본토 공습

수상의 자결과 서역의 마무리

폐하신틀로렌으로

제118차 헤르초 공습과 항복

멜란의 수도인 헤르초(Heirycho)는 전쟁 기간 동안 총 118번의 공습을 받았다. 물론 그 118번이 대대적인 폭격이었던 것은 당연히 아니고, 딱 두 번을 제외하고서는 항만 시설이나 공항, 군사 시설을 겨냥한 정밀 폭격이었다. 그 두 번이 각각 1, 2차 대공습이라고도 불리는 46차와 118차 공습이었다.

아르세도스 국제연합기구의 설립

타천사가 하늘에서 떨어지다

과도기의 도래

남북폭동

남쪽에서는 니델레이센 일리아미키르의 재집권을 꿈꾸는 폭동이, 북쪽에서는 공산화를 꿈꾸는 폭동이 발생했다. 클레도리아 근현대사에서 가장 논란이 심한 부분 중 하나다.

어좌에 다시 앉다

시위

현대

클레도리아 민주헌법셋째 제국

세르네세 초공황제일레시넬과 공동 즉위하며 모든 정치적 실권을 포기하다. 이에 따른 클레도리아 민주헌법이 제정, 공포, 시행되면서 길었던 제2제국이 막을 내리고 클레도리아 제3제국의 문이 열리다.

호황과 눈물

클레도리아는 승전국으로서의 외교적 지위 상승과 더불어, 서역과 다르게 온전한 내륙 지방과 강대한 국력을 여전히 자랑하며 초강대국 지위에 오름에 동시에 전후 재건 및 경제적인 호황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전쟁의 화마를 직접 입은 서남부 국민의 눈물, 멜란의 "까마귀떼"[13]와 "말벌"[14]을 견뎌낸 동해안 지역[15], 그리고 친베루디야 극좌 게릴라[16]는 여전히 전쟁의 여진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이중성의 늪이다.

에레수리아의 도약

수도인 만큼 적극적인 개발 정책에 더불어, 일대 건설 붐을 주도한 에레수리아 도시권은 한결 깔끔해진 도시 인프라와 카피톨리아 광역권수도시로 돌아가려던 전쟁 피란민들의 수요를 안고 인구와 경제 규모 둘 다 급성장하게 된다.

물론 여기에는 빛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전쟁으로 인해 생활 기반이 파탄난 저소득층이 다수 몰려들면서 치안이 안 좋아지는 역효과가 생겨난 것. 조직폭력배가 기승을 부렸으며, 특유의 부분귀향 풍습이 이때 성행하게 된다.

에네프샤 해협의 갈등

안타깝게도 천 수백 년 이상 종교갈등을 이어가던 에네프샤 해협은 아직도 서로 싸워대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곳은 현실 지구의 수에즈 운하만큼이나 중요한 무역루트라는 것!

본래 에네프샤에 거주하였던 요메니(Jomenj)인들이 이곳에 돌아오면서, 루메르스인, 일리에르센인, 샤라메르인, 에네프샤인, 알리아네샤인들과의 여섯 콤보 민족갈등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긴장 상태가 계속되자, 지정학적 중요도가 쏠리는 것을 막고자 루메르스 대운하를 확장하였다. 덕분에 아래 신경전의 화마는 간신히 피해갔으나, 수 차례의 서역전쟁 발발은 차마 막을 수 없었다.

베루디야와의 신경전

현실의 냉전이다. 자유/자본 진영인 헬리나르 남방 국가들과 사회주의/공산 진영인 헬리나르 북부 국가들을 주축으로 한 수십 년 간의 이념 갈등이었다.

남방은 범메르데소르 협력 기구를, 북방은 환북극 벨트 연합을 각각 창설하여 각 진영의 결속을 도왔다. 핵전쟁의 위협이 도래했기 때문에 무력 충돌은 처절하게도 서로 피했지만, 동시에 서로를 극도로 염탐하던 시대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위험했던 것은 클레도리아 제3제국베루디야 사회주의 연방이 국경을 길게도 맞대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신경전 초기에는 국지전이 벌어지기도 하였으나(산발전쟁), 필사적으로 자제하여 스파이 통로에 머무르게 된다.

멜란의 거품

신경전이 소강기를 맞을 때, 시장의 자유화 및 화폐가치 급등의 물을 탄, 양적 완화 정책을 등에 업은 멜란은 최전성기를 맞는다. 그들이 맞은 엄청난 호황 아래, 극도로 부유하며 광기 넘치는 수 년 간의 황금기를 보내게 된 것이다.

멜란이 보유한 탄탄한 기초과학 기술력은 혁신적인 기술들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하였고, 이렇게 얻은 황금기 시절의 막대한 자본은 세계 곳곳에 재투자하는 데 마음껏 사용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이 이례적인 호황이 거품이었던 줄 알지 못했다.

에르멜리시아는 자유를 원한다

얼음 궁전이 붕괴하다

세계는 거미줄

하르나르는 추격한다

샤룬트함은 자유를 원한다

샤룬트함은 평화를 원한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드람리아섬이 차오르다

아르세도스는 아프다

  1. 남부 한정.
  2. Selis Palegonir. 클레도리아의 시초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단군왕검 정도의 위상.
  3. 본질은 성읍국가였기에, 도시와 나라의 경계가 모호하여 수도시의 옛 성도 당시에는 클레도리아라고 불렸다.
  4. 물론 고대어가 쓰인 시대였으므로 어형은 당연히 달랐다.
  5. Palegonir, 존귀한 지도라는 뜻.
  6. 이 이름이 가문명이었음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지명에서 왔는지, 누군가의 인명에서 왔는지는 알 수 없다.
  7. 자신들의 주 수입과 돈줄이 망가진 것으로 해석하면 좋겠다
  8. 스테보니아주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9. 클레도리아를 칭한 두 번째 왕국.
  10. 시대적 한계라고 보는 편이 알맞을 것이다.
  11. 동로마 대 사산 왕조
  12. 황제의 나라가 아니라, 여러 나라들이 모여 있다는 뜻이다.
  13. 클레도리아에서 폭격기를 일컫는 은어다.
  14. 융단폭격을 일컫는 은어.
  15. 수도 카피톨리아도 포함이다.
  16. 속칭 빨치산. 제정을 무너뜨리고 클레도리아를 공산화시키는 데 주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