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톨리아 광역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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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톨리아 광역철도
Capitolia Polícent[1] | Caphetølia Pléchent[2]
개업일 5270년 5월 27일 (181주년)
총연장 ? km
노선 수 33개+
역 수 400개+
궤간 1440mm[3]
운행 지역 카피톨리아 광역권 전역
하위 체계 카피톨리아 지하철[4]
카피톨리아 광역철[5]
요금제 카피톨리아 통합 요금제
소유자 카피톨리아 철도공사[6]
문의전화
021-3399-1848

개요

카피톨리아 광역철도클레도리아 제3제국[7]의 수도권, 카피톨리아 광역권을 운행하는 대규모 도시철도/광역철도/통근열차 시스템이다.

무려 181년 전[8]인 5270년에 개통하여, 지금까지 매년 10억 명은 거뜬히 넘는 유동인구를 맡아 광역권 곳곳을 이동시켜주는 카피톨리아 교통의 총본산이다.

클레도리아어로는 Capitolia Polícent라고 부르며, 직역하면 '카피톨리아 도시철도'이다.

카피톨리아 광역권에서 운행하며, 다른 지방의 철도선과는 호환되지 않는다. 클레도리아 실무정부의 "전국통합교통카드" 발족에 가장 먼저 참가한 곳이다. 이후로는 CSC를 관할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클레도리아 철도공사가 참가하였기 때문에 타 지역에서도 쓸만하다.

상세

클레도리아 전국에서 가장 크고 복잡한 전철 시스템이다[9]. 하르나르와 베녤민델이 급부상하기 전까지는 세계에서도 두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한 지하철이었다.

5272년에 개통하여 매우 오래되었으나, 당시 뛰어난 기술을 집대성하였고 예전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보니 강도 "최적화"가 불가능하여 오히려 남아도는 하중 강도 덕에 괜찮게 보수공사를 하며 깔끔하게 써먹고 있다.

도시권이 크므로, 도시 자본이 넘쳐나는 편이라 골동품/폐허 보다는 복고 느낌이 강한 편이다. 그래서 도색도 역 모습에 어울리게 맞추어 한다. 그런 한편, 지하 상가가 만들어진 역은 반짝이는 최신 모습을 가지기도 한다. 덕분에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스폿. 따라서 역사(驛舍)에서 다른 연계 건물로 이어지는 곳은 은근 인기가 많다. 이걸 알고 "세월이 흐르는 도시의 모습"을 테마로 한 지하철 역내 전시회도 많이 연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신틀로렌 지하철이라던지, 마스카르 지하철이라던지, 상하운행으로 유명한 카스비아 지하철[10] 등등보다는 시설이 낡았다고는 하나, 수도이기도 하고 인구가 폭증해서 광역권 수입이 많이 늘어난 김에 수리를 열심히 해서 나쁘지 않다는 평을 듣고 있다.

단단한 화강함 산과 지반을 공유하는지라[11] 런던 지하철이나 모스크바 지하철과 같은 수모를 겪지 않았다.

역사

5430년경, 광역권 중심부 지도


클레도리아 제2제국 시절부터 카피톨리아 수도시에 근대화가 이루어졌기에, 카피톨리아 광역권 일대에는 차 인프라보다 기차 인프라가 빨리 잡히게 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마차, 수레 등등의 인프라가 깔려 있었지만, 대개는 도로가 그리 넓지도 않았거니와 아스팔트 포장이 아닌 마름돌이었다[12]. 물론 전에도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던 곳이거나, 장터 등으로 다방면으로 활용되었던 길들은 조선의 육조거리, 종로 등의 예시에서 볼 수 있듯 넓었다[13].

이 당시에는 북방을 견제하기 위해 쌓여왔던 강력한 농업 도시 카피톨리아 수도시가, 해상 교역 도시이자 산업 도시로 발돋움하여 오르가르시를 넘어 제국 최대 도시 지위를 넘보고 있었다. 따라서, 이 커지는 교통량을 감당하기 위해 클레도리아 최초로 카피톨리아 수도시카피톨리아역에서 교통의 최고 요충지인 신틀로렌시신틀로렌역을 잇는 노선이 완공되었다. 5258년이었고, 당연히 지상이었다. 물론, 이는 좋은 항구로서의 입지를 가져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교역 물류량을 감당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애초에 나라가 워낙에 큰 데다, 마침 곡창지대인 오르가이아주가 내륙에 있다 보니 인구 밀집 지역인 안쪽으로 어떻게든 물자를 이송해야 했던 필요성도 있었다. 따라서 오르가르시까지 물자를 이송하는 철도가 깔리고, 마침내 오르가르호를 따라 쭉 둘러가는 열차가 깔리게 되자 중부의 물자 수송 효율은 극대화되었다[14]. 종전에는 신틀로렌시에서 마차를 가지고 물건을 옮겼으나,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되는 기차라는 훌륭한 대체제가 마련되었기 때문이었다. 시내에서도 증기 자동차, 아니면 내연 기관 자동차가 차례 차례 보급되며 수송 효율이 훨씬 좋아지기에 이르렀다.

한편, 동시에 카피톨리아 수도시 근방으로 이주를 해 오는 사람들은 늘어만 갔다. 수도시는 대양을 건너는 무역을 할 수도 있는 남동해안을 두른 해상 교통의 종점이었다. 덕분에 금융이라던지, 무역이라던지, 수송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높아져 갔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기에 식당을 차린다던지, 유동인구를 처리한다던지 하여 돈을 버는 서비스업도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일자리가 폭증하자, 인구가 느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던 법이다. 따라서 구도심이었던 네이르구, 테리스 에르센디아구케핀소리아 영역을 넘어 엘리시아 영역을 필두로 에세르센디아를 빙 둘러 클레니에스시에르가르네시, 멜라네이르시 일부에도 엄청난 양의 주택이 늘어나 스프롤 현상을 겪기 시작했다.

상황을 타개하지 못한다면, 도심지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교외의 주거지에서 모두 뒤섞여 교통 헬게이트가 열리기 십상이었다. 그린벨트가 이미 정해져 있어서 수도시는 어느 정도 슬럼 문제에서 자유로웠으나, 땅값의 폭증이니, 위생 문제니 하는 것은 그대로였다. 따라서 클레도리아 실무정부는 교통 혼잡을 완화할 수단을 물색해보았다.

일단, 마차를 확대하는 것이 있다. 가장 보편적이고 원시적인 마차는 택시 형태였지만[15], 소르케닐렛 모레니에르실[16][17]이 고안한 정규노선마차[18]를 필두로 점점 주거지가 많은 교외에서 시내로 운송하는 서비스가 융성하기 시작했다[19]. 하지만 이것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인구는 점차 800만을 바라보기에 이르렀다. 말 똥 같은 문제 때문에 증기 자동차를 도입하고[20], 나중에는 석유도 도입하였으나 역부족이었고, 결국 기차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실 가장 먼저 깔린 것은 트램이었다. 당연히 깔기 쉽기 때문이었다. "테리시아 철도 주식회사"가 설립되어 5258년부터 계획을 구상하기 시작해, 허가 및 법 개설까지 기다리고 투자를 받느라 오래 걸려 12년 만에 테리시아선[21]이 처음으로 개통하였다. 하지만, 지상에 있다 보니 기존의 교통 문제와 맞물려버렸고, 노선 추가를 점진적으로 허가하는 한편, 여러 자본가들의 투자 하에 "에세르센디아 철도 주식회사"가 설립되어 5261년에 지하철 계획을 시작, 5272년에 개통하였다. 당시 개통된 것은 에세르센디아선 오르가에파이아역~그레시엔역이었다.

사실 이들이 개통된 곳은 도심지였다. 따라서 통근과는 거리가 좀 있고, 도시 안에서 이런 교통망 수요가 어떻게 되는지 보기 위해서 작업한 것에 가까웠다. 그 진상은 5276년쯤 되면 드러났다. 대성공이었던 것이다. 마차들은 교외로 나가고, 수가 줄면서 교통은 훨씬 상태가 나아졌고, 시민들의 삶의 질도 좋아졌으며 인구도 더 안정적으로 늘려나갈 수 있게 되었다.

5277년에 관련 법이 통과되자, 이때를 기점으로 해서 엄청난 양의 회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엘리시아, 서수도시, 클레니에스, 멜라네이르, 테리시, 니실리아, 그레시엔... 그래서 초창기 카피톨리아 광역철도는 여러 회사 간 조율되지 않은 환승 시스템 등으로 지옥을 맞았다고 전해진다. 동시에 로비가 진행되어, 마차를 규제하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하였다. 아무튼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5300년에 가서는 마침내 "카피톨리아 광역권 철도 통합법"이 만들어졌다. 이 조치에 따라서 모든 철도 회사는 지상철 부문과 지하철 부문으로 나누어졌으며(자회사), 이 조치에 따라 둘의 사업 부문은 완전히 차별되었다. 이렇게 하여 통합 전 회사들이 주식 지분을 나눠 가지며 "카피톨리아 지상철 회사"와 "카피톨리아 지하철 회사"로 나뉘게 되었다.

그러다가 황조의 공황이 일어난다. 엄청난 불경기가 닥치며, 사기업들은 모두 심각한 침체를 맞는다. 따라서 이 회사는 클레도리아 제2제국 실무정부에 매각되었으며, 이후 니델레이센 일리아미키르 총리의 공공개선사업을 진행하는 데 요긴하게 써먹는다. 대체로 역 수리 및 정비, 노선 전철화 등등. 그러다가 제2차 동서대전이 일어난다. 지상철은 많이 파괴되었지만, 지하철은 살아남아 오히려 방공호 용도로 요긴하게 쓰였다. 결국 종전 직후, 트램은 폐지되어 지상철 자회사는 소멸, 시내버스가 그 위치를 대신 꿰차게 된다.

카피톨리아 철도공사로 모두 통합되어 2차대전 이후로 지어진 노선들은 대부분 수익형 민자사업(BTO)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민자사업에 참여한 회사는 에르세리아시, 펜니렐리시, 에르가르네시 신도시 개발 및 수도시, 클레니에스시, 멜라네이르시 재개발에 참여한 부동산/건축 관련 회사 계열인 경우가 허다했다. 덕분에 탄탄한 근교 주거 환경이 만들어지게 되었다[22].

이때, 엘리시아 영역이 급부상하게 된다. 고위자들이 많이 살던 클레니에스시와 명실상부 수도인 카피톨리아 수도시 중심부를 잇는 위치에 있던 데다, 만을 끼고 있어 항구 운영/수자원 공급에도 좋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서다. 본래 이곳은 스프롤을 제대로 때려맞은 중산층 이하의 주거지역이거나, 도심에 놓기는 뭣한 공장들이거나, 그냥 논밭이었다. 하지만 2차대전 의 잿까마귀 공습 당시[23] 이러한 공습에 취약했던 서부 신시가지의 수많은 건물들은 전소하고 만다. 물론 이것과 비등하게 동부에 있던 건물들도 많이 불탔지만, 공원이 많은 정돈된 도시였으며 고대 카피톨리아 성곽이 있어 화를 피한 곳도 많았다. 엘리시아 영역 건물들이 말 그대로 리셋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왜 난개발되도록 놓아둔 그 지방이 잿까마귀 공습에 무참하게 털렸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도시공학이 새로운 학문으로 떠올랐고, 이미 불어나버린 도시권을 관리하고 교통 시설을 확충하는 것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엘리시아 영역이 재개발되었다. 물론 케핀소리아 영역도 재개발되었고, 서쪽의 모토는 "번영"이며 동쪽의 모토는 "재기"였다.

새로 출범한 클레도리아 제3제국의 시대가 되었다. 여기서 자가용은 도시 안에서 왔다갔다 하는 데 쓴다는 인식이 강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일단 나라 자체가 워낙에 커서 먼 곳을 직접 운전하는 것은 무리인 데다가, 철도 교통이 굉장히 오래되어 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국내선 비행기 노선이 활성화된 것도 한몫했다. 게다가 교통량 통제를 하기 위해 전부터 차고지 인증제를 도입하였다. 골목길 주·정차는 이제 도심지에 마차 몇 대 세워두는 수준이 아니었다. 애초에 돌 도로에서 아스팔트로 전환된 것도 상당히 늦었다.

클레도리아는 땅이 넓어 단독 주택이 참 많다[24]. 당연히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집을 선호하며, 그러려면 넓은 집이 필요했다. 따라서, 여러 세대가 한 곳에 모인 주택에 사는 경우는 어딘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경우로 치부하였다. 사회 초년생, 그냥 빈곤층/약자 등등. 물론 도심지 아파트는 예외다[25]. 카피톨리아 광역권은 온대와 냉대의 경계 지역쯤에 있고, 해안가니 당연히 해양성 기후를 지닌다. 그래서 난방을 그렇게까지 빡세게 하진 않으나, 메르데피르[26]엣사르피르[27], 그리고 겨울철 폭설로 대표되는 기상 재해는 많아 복층 이상을 선호하게 되었다.

다만 이촌향도 때문에 각종 효율을 올리기 위해 도회지에 있는 중심부 주거지들은 죄다 아파트 형태고, 좀 경계 지역으로 나가면 단독주택이 나타난다. 물론 교외 지역은 전부 단독주택이다. 그리고 이쯤 되면 예전에 있었던 "도회지 기차 선로 지하화법"이 적용되지 않아, 몇십 년 된 지상 기차 선로가 많다. 도심지나 교외나 남는 공터가 학교 혹은 임야로 남는 것은 여기도 마찬가지.

클레도리아의 주거에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면, 주택 단지가 있다는 것이다. 주택을 여럿 짓고, 단지로 나누어 매매/월세 등을 하는 것이다. 경비도 있고, 기본적인 주택 관리도 어느 정도 해준다. 아파트를 수평으로 펴 둔 꼴인데, 한 단지는 많아봐야 50세대 정도 된다. 이런 건 좀 최근에 만들어진 신도시 지역, 에르세리아시 쯤 가야 보인다. 아니면 스프롤을 다듬고 재개발을 할 때, 민자사업 회사의 부동산 관련 계열사가 나서서 꾸리기도 한다. 이러면 기차 비용이 할인되어 선호된다. 주택 단지는 클라르킬리아의 영향을 받은 고을주의의 잔재라고 볼 수 있겠다.

노선

이상하게도 개통 순서와는 관련이 없으니 참고 바란다.

안내 방송

기타

  1. 클레도리아 표준어. 카피톨리아 폴리켄트
  2. 세느데실 표준어. 까페퇼랴 플례셩트
  3. 아르세도스 국제표준궤.
  4. 수도시내를 지나가는 것.
  5. 수도시외만 지나는 것.
  6. 공기업이다. 철도공사의 주주는 카피톨리아 광역권.
  7. 처음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클레도리아 제2제국 당시부터.
  8. 5451년 기준.
  9. 오래된 것을 따지면 플라다렌(5268)과 오르가르(5269)가 시범 성격을 가졌기에 살짝 더 빠르다.
  10. 유례를 찾기 힘든 거대한 지하도시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11. 지구과학 전문용어로 카피톨리아 수도시 A3시기 화강암이라고 한다.
  12. 지금도 네이르구, 테리스 에르센디아구, 케핀소리아 영역 서쪽 일부는 거대한 마름돌이다. 물론 문화거리 컨셉으로.
  13. 지도의 붉은 길들이 본래는 그러하였다. 도심지의 몇몇은 5450년 기준으로 고속도로가 되거나 고가화되어 있다.
  14. 5450년 현재에도 클레도리아는 엄청나게 화물 열차를 굴려대는 나라다.
  15. 인구 증가를 노리고 대도시에 이주해 이러한 마차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많았다.
  16. 간단히 말해서 클레도리아에선 버스의 대부다.
  17. 5261~5329. 남성, 카르네세리아현 출신.
  18. 대략 열다섯 명까지를 태울 수 있는 말로 끄는 수레 같은 개념이다. 눈치채셨겠지만, 바로 버스다.
  19. 이러면, 항상 시내에 살아서 이미 꽉 찬 상태의 마차를 마주하게 되었다.
  20. 정부의 지시 하에, 회사들이 점점 따른 것에 가깝긴 하였다.
  21. 지금은 메르센니선이 되었다.
  22. 교통/육운과 국내 관광업을 동시에 겸하는 회사들도 많았다.
  23. 니델레이센 일리아미키르의 독단체제로 돌아가던 클레도리아 제2제국 당시, 에르멜스 연방제국의 항공 양동작전에 제대로 낚여 수도가 융단폭격당한 사건. 총리의 실각과 독재 혁파에 크게 기여한다.
  24. 미국만큼 성대하지도 않고, 대중교통이 멸망하지도 않았다.
  25. 지가가 천정부지로 올라 이렇게라도 용적률 안 올리면 감당 못 한다.
  26. 태풍
  27. 장마
  28. 深山線
  29. 이름의 뜻은 "올가미".
  30. 이름의 뜻은 "남북선".
  31. 이름의 뜻은 "연장선".
  32. 자기부상열차시범선.
  33. 이름의 뜻은 "영당선".